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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Aug 02. 2020

[라디오 대본] 노래의말들1화 순례자

이적 - 순례자

* 아래 링크에서 방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사용된 음원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링크로 이동됩니다. 

1화. 우리를 행인이 아닌 순례자로 만드는 것은 / 이적 - 순례자 / 9분 / A4 2장



opening _ 김재영_ Night In Paris

프랑스 소설가 파올로 코엘료는 그의 데뷔작 순례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한 척의 배로서 여러분은 요즘 어떤 항로를 지나고 계신가요? 때론 험한 파도를 만날지라도 그 길이 외롭지 않도록, 노래의 말들, 저는 김숲입니다. 


안녕하세요. 가사가 좋은 노래를 읽고 소개해드리는 노래의 말들, 김숲입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노래들 참 많죠. 멜로디가 좋아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도 있고, 몸을 들썩이며 춤추게 하는 노래도 있지만 ‘아 이건 내 얘기 같다’라고 느낄 수 있는 노래는 가사 좋은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노래의 말들에서는 좋은 가사들을 소개하고 읽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이번 봄엔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각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평소에 미뤄뒀던 무거운 고민들이 단체로 고개를 드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인생이 뭐지? 뭐 이런 고민들… 불안한 마음, 흔들리는 동공 오늘은 그런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가수 이적님의 - 순례자라는 곡입니다. 읽어드릴게요.


순례자 - 이적 작사, 작곡

발자국 소리

길은 또 여기서 갈라지고 다시금 선택은 놓여있고 

내가 가는 길 내가 버린 길 나 기억할 수나 있을까

어느 하늘 어느 대지 어느 바다 어느 길 끝에 나조차 모르고 좇는 그 무엇이 있을까


새소리, 빗소리

해는 또 언덕을 넘어가고 바람은 구름을 불러오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나 그저 걸을 수 있을까

어느 하늘 어느 대지 어느 바다 어느 길 끝에 나조차 모르고 좇는 그 무엇이 있을까


발자국 소리

돌아가고 파 고개 돌려도 흩어진 발자국 하나 찾을 길 없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길의 시작은 여긴가


별은 또 갈 길을 일러주고 이슬은 눈물을 덮어주고

아주 먼 훗날 힘이 다할 때 나 웃고 잠들 수 있을까


2003년 5월 발매한 앨범 2적에 수록된 곡입니다. 그 유명한 ‘하늘을 달리다.’가 있는 앨범이죠. 저는 이 노래를 올해 처음 듣게 됐어요. 제목이 멋지다. 이적님 노래다. 이래서 들어봤는데요. 멜로디와 이적님의 음성도 좋았지만 눈에 그려지는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계속 들었습니다. 가사를 한번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길은 또 여기서 갈라지고 다시금 선택은 놓여있고' 

첫 줄에 화자는 갈림길을 마주합니다.  또, 다시금, 이라는 단어에서 보이듯 화자가 수도 없이 선택의 기로 혹은 딜레마에 섰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 내가 버린 길 나 기억할 수나 있을까'

어느 하늘 어느 대지 어느 바다 어느 길 끝에 나조차 모르고 좇는 그 무엇이 있을까


그 갈림길에서 화자는 선택을 했겠죠. 하지만 선택한 그 길 맞는지 틀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길을 선택한 게 더 좋지 않았을까. 불안함 위에서 서있지만 멈추진 못하고 계속해서 펼쳐진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해는 또 언덕을 넘어가고 바람은 구름을 불러오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나 그저 걸을 수 있을까'

시간은 흐르고 힘든 선택은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앞으로 계속 걸을 수 있을까? 이 선택이 맞았을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화자는 지치기 시작합니다. 


'돌아가고 파 고개 돌려도 흩어진 발자국 하나 찾을 길 없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길의 시작은 여긴가' 

'돌아가고파' 여기서 이적님이 샤우팅을 하시는데 정말 절절합니다.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봅니다. 어쩌면 도움이 될까. 여태까지 해온 선택을 돌아보지만,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길의 시작이 여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우리 인생의 의미나 정답이 저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내게 가까이 있는 것에 있다는 것이죠. 순례의 목적이 어쩌면 성지가 아니라 순례길 걸음마다 드리는 기도인 것처럼 말이죠. 그러자 희미하게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별은 또 갈 길을 일러주고 이슬은 눈물을 덮어주고 깨달음 뒤에 이슬 같은 위로가 얹어집니다. 


'아주 먼 훗날 힘이 다할 때 나 웃고 잠들 수 있을까'

이렇게 끝이 나는데요. 여전히 걱정되지만 마지막 줄에 웃고 잠들 미래를 상상하는 화자와 첫 줄에 갈림길에 서있는 화자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아마도 길을 걷는 화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머물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제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나조차 모르고 좇는’이라는 부분이었어요. 학생 때 공부하면서 그리고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왜 이걸 하는 걸까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되죠. 막막해지죠. 이유 따위가 뭐가 중요해 그냥 사는 거지 뭐 하기엔 인생이 너무 허무한 것 같고요. 이런 생각도 해봐요.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을 해요. 내가 지금 이거 왜 하지?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 끝끝내 답을 찾지 못하면 그 질문은 무의미한 것인가.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를 행인이 아닌 순례자로 만드는 것은 때론 그 끝이 ‘모르겠다’ 일지라도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순례자로서 매번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어떤 이는 글을 쓰고 어떤 이는 노래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closing - 유민규_Bed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신가요? 어떤 표정으로 걷고 계신가요? 그 길의 끝이 분명하지 않아 두려우시다면 순례자가 되어 보시죠. 도착지가 아닌 걸음에 집중해보면 그동안 가까이 있었지만 보거나 듣지 못했던 것에서 인생의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먼 훗날 힘이 다할 때 우리가 웃고 잠들 수 있기를.

감사합니다. 

노래의 말들, 저는 김숲이었습니다. 



노래의말들 브런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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