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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Aug 14. 2020

[노래의말들 대본] 여름에 쌓인 눈은 언제 녹나요?

자이언티 - 눈 / 윤종신 - 그래도 크리스마스

아래 링크에서 방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 -)


[opening_Hemio_봄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녀가 다가와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밞으며 온 남자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감싸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을 내려 덮고 있었다. 벌써 저렇게 추워졌나 하고 시마무라가 밖을 내다보니, 철도의 관사인 듯한 가건물이 산기슭에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을 뿐, 하얀 눈 빛은 거기까지 채 닿기도 전에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


8월, 여름에 한가운데서 노래의말들 시작합니다.


오늘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장면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첫 문장으로 단숨에 독자를 눈의 고장에 데려다 놓는 소설입니다. 작년에 읽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 내용이 기억이 안 나요. 예전에 이런 게 너무 억울했는데 이제는 ‘오 또 읽어야지.’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사실 처음 읽는 그 낯선 느낌은 책을 읽어버리면 다시 갖기가 힘들잖아요. 근데 저는 워낙 잘 잊어버려서 또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눈, 겨울과 관련된 노래를 준비했는데요. 한여름에 꼭 눈과 관련된 노래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겨울이랑 눈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한여름이 오히려 겨울이 간절한 시간 같아서 두 곡을 골랐는데요. 준비하는 내내 눈을 상상해서 그런지 입꼬리랑 눈썹 올라간 채로 대본을 썼습니다.  

올해 눈을 보셨나요? 저는 2월에 근처에 대학 캠퍼스가 있는데 그 학교 안에 호수가 있거든요. 뚱뚱한 패딩 입고 카메라 매고 혼자 눈 구경하러 갔습니다. 카메라에 자꾸 입김이 서려서 흡 숨을 한 컷 찍고 흡 하고 또 한 컷 찍고 조그만 눈사람도 만들고 혼자 겨울연가 찍었던 기억이 있네요. 이번 겨울까지 방송을 계속한다면 겨울밤 들을 수 있는 좀 긴 방송을 준비해보고 싶습니다. 겨울은 밤이 기니까요. 네 오늘 첫 번째 곡으로는 자이언티의 ‘눈’ 읽어드리겠습니다.



[평범한 피아니스트_국어 선생님의 첫사랑]

자이언티-눈(feat.이문세)


내일 아침 하얀 눈이 쌓여 있었으면 해요

그럼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려드릴게요
계속 내 옆에만 있어 주면 돼요 약속해요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눈이 올까요 그대 감은 눈 위에

눈이 올까요 아침 커튼을 열면 눈이 올까요
 

서두르지 마요 못다 한 얘기가 있어요

잠이 들고 나면 오늘은 어제가 되어 버려요
계속 내 곁에만 있어 주면 돼요 약속했죠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눈이 올까요 그대 감은 눈 위에
눈이 올까요 아침 커튼을 열면 눈이 올까요
잘 봐요 밖이 유난히 하얗네요
눈, 눈이 와요 눈, 눈이 와요 눈이 와요 눈이 와요 창밖에도 눈이 와요
어제 우리 말한 대로 차를 한 잔 내려드릴게요


2017.12.4 발매한 자이언티의 ‘눈’ 듣고 오셨습니다. 2절은 이문세 님이 피처링하셨습니다. 뮤직비디오는 안재홍 배우님이 출현하셨는데요. 혹시 안재홍, 이솜 주연의 ‘소공녀’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뮤비가 영화랑 묘하게 이어지는 느낌 있거든요. 영화감독님이랑 뮤비 감독님 실제로 부부라고 하시는데요, 노래의말들 들으시고 영화 ‘소공녀’ 보시고 ‘눈’ 뮤직비디오까지 보시는 코스를 추천드립니다.  

2017년 겨울에는 이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그때 저는 남쪽에 살았어서 눈이 안 오는 곳에 있었거든요. 이 노래로 대리만족을 했었습니다. “눈이 와요”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자이언티 님, 이문세 님이 같이 부르시는데 정말 눈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악기와 목소리와 가사가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게 신기한데, 정말 눈이 오는 시각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공감각적 심상 그런 거죠. 올해 겨울에는 실제로 떨어지는 눈을 보면서 듣길 기다려봅니다.

자이언티 님이 부르신 1절에서 화자는 “계속 내 옆에만 있어 주면 돼요. 약속해요.”라고 하고, 이문세 님이 부르신 2절에서 화자는 “계속 내 옆에만 있어 주면 돼요. 약속했죠.”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데요. 1절은 현재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 2절은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눈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곡이었습니다. 눈과 겨울은 상반된 이미지들 가지고 있는 단어인 것 같아요. 노래에서처럼 포근한 이미지와 쓸쓸한 이미지 둘 다 있고요, 하얗고 깨끗하지만 그래서 쉽게 더러워지기도 하고, 올 때는 천천히 쌓이지만 금방 녹아서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겨울과 눈을 좋아하는 게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름엔 따뜻함을 느끼기 어렵잖아요. 따뜻한 게 아니라 덥죠. 밖이 막 추워야 온전히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런 겨울을 기다리며, 윤종신 님의 ‘그래도 크리스마스’ 읽어드리겠습니다.  



[평범한 피아니스트_산타는 언제 일하죠?]

윤종신 - 그래도 크리스마스


참 힘들었죠 올해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도 그럴 수가 있는 건가요

잘했어요

참아 내기 힘든 그 용서할 수 없는 걸

다 함께 외쳤던 그 날들

정말 젠틀했던 강렬했던

뭘 바라는지 또 뭘 잃었는지

우린 모두 알고 있죠

하나하나 다시 해요

지금 내 옆 거짓말 못 하는

작은 꿈들로 사는 사람들

그들과 건배해 오늘은 그래도 크리스마스

믿고 믿고 싶어 고개 끄덕일 수 있는 내일

이제는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 건지

나 어른 되는 동안 사랑하기도 모자란 세월 속에서

내리는 하얀 눈 진실만큼은 덮지 말아 줘

그래도 크리스마스 그래도 I Love You My Love

그래도 내 사랑 내 사람 행복해 줘

뚜루루루 나아질 거야 내일은 길을 걷다

누구라도 마주치면 같은 맘일걸 Merry Merry Christmas

오 그래도 크리스마스 곧 해피 뉴 이어

더 어른 되면 좀 더 괜찮은 얘길 해요

가슴이 따듯해지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 날들


2016.12.17 발매된 윤종신 님의 ‘그래도 크리스마스’ 듣고 오셨습니다. 크리스마스 앞에 ‘그래도’가 붙은 이유는 2016년 이기 때문이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19살 청년이 목숨을 잃었고요,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이 있었던 해이기도 합니다.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으셨던 농민 백남기 님이 돌아가셨고 국정농단 사건까지 정말 아프고 힘든 한 해였지만 다 같이 모여 촛불을 들었던 어둠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노래를 불렀던 뜨거웠던 겨울이었습니다. ‘정말 젠틀했던 강렬했던 뭘 바라는지 또 뭘 잃었는지 우린 모두 알고 있죠 하나하나 다시 해요’라고 이 노래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에서 이 모든 사건들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거든요. 정말 가슴이 찡해지고 울컥하는 뮤비니까 꼭 함께 보셨으면 좋겠네요. 이번 연말에도 코로나로 또 지금은 수해로 많은 분들이 고생하셔서 ‘참 힘들었죠’ ‘잘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란 말을 전하고 싶은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인생의 겨울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몸은 무거워지고, 행동도 느려지지만 시간을 빨리 가는 노년의 겨울, 여러분은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어떤 모습이고 싶으신가요? 저는 꿈꾸는 장면이 있긴 합니다. 전제 조건이 좀 많기 한데요. 일단 지붕이 세모난 통나무 집에 살고 있고요, 깊은 숲 속은 아니고 얕은 숲 속. 그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와서 문이 막 안 열리고 “어떡하지 집에 갇혀버렸네.” 할머니가 된 아내가 걱정을 하면, ‘돈 워리 허니’ 내겐 있지 벽난로. 벽난로를 켜고, 아직 살아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나 오늘 놀러 못 가” 이러면 친구가 “거짓말 치지 마셈”하면 눈 사진 찍어서 보내주고 “헐 대박, 오래 살고 볼일” 하고 전화를 끊겠죠. 그리곤 나무로 만든 책상 앞에 가서 나무 의자에 앉아서 읽다 만 소설을 펼치고 싶습니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미래에, 그 나이엔 뭘 해야 되고, 뭘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듣기도 하는데, 그런 것과는 별개로 미래의 하루를 이미지로 그려보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좀 더 명확해지더라고요. 상상이야 철없지만 뭐 어떻습니까. 나만의 할아버지 할머니 겨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시길 응원합니다.


[closing_Hemio_봄비]

오늘은 자이언티 님의 ‘눈’ 윤종신 님의 ‘그래도 크리스마스’ 읽어드렸습니다. 작년 서울에 첫눈이 관측된 날짜가 11월 15일이더라고요. 오늘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10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피로, 고민, 걱정이 그날엔 모두 첫눈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바뀌어있길 기도해봅니다. 이번 주도 수고하셨습니다. 노래의말들 김숲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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