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말들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ost]
* 아래 링크에서 방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한참 기다렸어요. 저 이거 빨리해야 되거든요. 얼마나 걸려요 아저씨?”
이곳은 초원 사진관, 교복을 입은 이 소녀의 이름은 ‘다림’입니다. 주차 단속을 하며 찍은 사진을 사진사 정환에게 들이밉니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있다 오면 안 될까요?” 아침부터 장례식에 다녀와 피곤한 정환도, 빨리 사진을 확대해야 하는 다림도 무더운 8월 더위에 조금씩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착한 주인공 정환, 더위를 잠시 식히고 나무 그늘에서 사진을 기다리는 다림에게 아이스크림을 슬쩍 건넵니다. “아까 저 때문에 화났었죠?” 한마디로 둘은 함께 웃죠. 글쎄요 그 둘이 언제부터 사랑에 빠지게 된 건지. 멋쩍게 뻗은 정환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다림의 손에 닿아서 둘을 이었을 때부터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들의 만남이 계속 달콤할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허무하게 끝날지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사실 정환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죠. 정환은 남겨질 이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혼자 남겨질 아버지에게 비디오 보는 법을 설명하다가 계속해서 서툰 아버지의 모습에 버럭 화를 내곤 방에 들어와 스케치북에 큰 글씨로 비디오 보는 법을 적기도 하고, 그동안 안 나갔던 동창 모임에도 나가죠. 사진을 남기 듯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시간을 한 장 한 장 마음에 담습니다. 건강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괜찮아 괜찮아. 하며 눈물을 꼭꼭 숨기며 말이죠. 그러나 걱정입니다. 다림에게까지 슬픔을 숨길 수 있을지, 함께 웃다가도 문득 슬퍼지는 눈을 들키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이 밤은 야속하게 깊어갑니다. 긴 이별이 하루만큼 더 가까워졌습니다.
산울림_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은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생각나면 들러봐요 조그만 길모퉁이 찻집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 향기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생각나면 들러봐요 조그만 길모퉁이 찻집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 향기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비 오는 날 우산을 나눠 쓰고, 밤에 사진관에서 맥주를 마시고, “쉬는 날 뭐해요?” 같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놀이동산에 가는 사이 가을이 되었습니다. 놀이동산에 다녀온 날 밤 둘은 노란 은행잎이 깔린 밤거리를 걸었죠. 정환의 귀신 얘기에 다림은 빠져들고 있을 때였어요. 다림의 두 손이 정환의 팔을 꽉 잡은 건요. 그러니까 정환이 잠깐 멈춰서 로봇처럼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고 했던 말을 반복하는 순간, 그러니까 그 밤이 잠깐 멈췄던 순간이었죠. 그래요. 마치 사진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운명이란 잔인한 녀석은 조용히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지 모릅니다. 얼마 후 정환은 입원을 하고 소식도 없이 사라진 정환을 기다리는 다림은 애가 타지만 끝내 둘을 만나지 못합니다. 이제 정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석규_ 8월의 크리스마스
이젠 너를 남겨 두고 나 떠나야 해
사랑도 그리움도 잊은 채로
고운 너의 모습만은 가져가고 싶지만
널 추억하면 할수록 자꾸만 희미해져
태연한 척 웃고 있어도
너의 마음 알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나의 손을 잡아 주렴
지금 이대로 잠들고 싶어
가슴으로 널 느끼며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싶어
태연한 척 웃고 있어도
너의 마음 알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나의 손을 잡아 주렴
지금 이대로 잠들고 싶어
가슴으로 널 느끼며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싶어
어느덧 겨울, 초원사진관에도 하얀 눈이 쌓였습니다. 어쩌면 하얀 눈이 된 정환이 사진관 간판쯤에 앉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카페 유리창으로 멀리서 다림은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사진관 앞 유리엔 다림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그리 그 앞에 검은 코트를 입은 다림이 서있네요. 미소 짓습니다. 처음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