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그랬어
생후 90일부터 혼자 잘 자던 아이는 두 돌을 기점으로 새벽마다 자다 깨 울면서 정신없이 안방으로 달려왔다.
분리수면을 포기하고 같이 자기 시작한 지 몇 년째. 작년 초에는 갑자기 (한국나이) 6세가 됐으니 언니라며 혼자 자겠다고 한다. 약간은 아쉬웠지만 분리수면 실패의 쓴맛을 보고 다시금 성공했다는 기쁜 마음도 있었다. 아이랑 같이 자면 내 수면의 질이 너무 떨어지니까. 기쁜 맘도 잠시, 아이는 2주도 안돼서 다시 엄마랑 자겠단다. (나 왜 아쉬워했니?ㅋ)
육아는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이렇게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하고 책이랑 영상 보며 열심히 준비했던 나의 분리수면 플랜은 진짜 대망했다. 이게 대체 뭐라고 실패했다고 좌절하고, 수면의 질이 너무 떨어졌다고 슬퍼했다가, 아이가 많이 커서 가끔씩은 아빠랑 잔다고 하면 좋으면서 아쉽기도 하고. 육아는 이렇게 복잡 다난하고 아이러니한 감정의 공존을 배우고 알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육아는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내가 아이의 기질을 바꿀 수 없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보면 분리수면 성공 여부는 굉장히 하찮은 일일 수 있다. 어떤 것에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아이와 나의 성장에만 주목하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조력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이제 아이는 귀신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매일같이 자다 깨서 안방으로 뛰어오진 않는다. 그래도 가끔씩은 새벽에 일어나 엄마를 찾을 때도 있다.
아이는 자다 깨서 내가 옆에 없으면 나를 찾으며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라고 말한다. 내가 있는 3층까지 올라오는 수고도 마다치 않는다. 잠결에 이렇게까지 이동하는 거 힘들 텐데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엄마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찾는 걸까 싶어서 귀여운 맘도 들고.
생각해 보면 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내내 그랬고, 아마 중학교 때까지도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유아기 시절은 말해 뭐 하는가. 완전한 엄마 껌딱지였다. 그저 엄마를 꼭 껴안고 있을 때의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엄마의 숨결과 살갗에서 나는 향기도 아직까지 기억날 정도로 향긋하기도 했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는 것도 싫었고, 늘 집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했다. 그저 엄마가 오랜 시간 날 꼭 안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지 않다 해도 늘 나와 같은 공간에 존재해줬으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와 나를 꽤 오랜 시간 분리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 아이는 “일하는 엄마“를 좋아해 주니 참 다행이다. “엄마는 컴퓨터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기도 빨리 커서 엄마처럼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엄마처럼 운전도 하고 싶고, 엄마처럼 입고, 엄마처럼 빨리 크고 싶다고 ㅋㅋㅋ
엄마를 이렇게나 좋아해 주는 고마운 내 딸:) 나도 좋아하지만 유치원 가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좋아하는 기특한 내 딸, 늘 오늘이 제일 예쁜 내 딸인데! 새벽에 깨서 엄마를 찾고 같이 자자고 칭얼대는 것쯤이야!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더이상 나를 잘 찾지 않을때 아쉽지 않도록 지금 더 많이 안아주고, 곁에 있어주고, 사랑한다고 더 자주 얘기해 줘야겠다. 사랑은 마음에 담아두는 것보다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때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