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힘든 시기에는 더더욱
나의 친언니는 2019년 11월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약간은 얼떨결에(?) 영주권을 받았고, 더 나은 상황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주어진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말릴 이유가 없었기에 격하게 응원해 줬다.
하지만 아빠의 병환이 깊어지다 보니 언니가 한국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언니도 지금의 상황을 자꾸 미안해한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럴 때 멀리 있어서 미안해.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 것 같네”
“물론 언니가 가까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우리가 이렇게 애틋한 건 결국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 동의하지?”
“맞아 ㅋㅋㅋㅋㅋ”
물리적 거리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언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더욱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는 너무나도 친밀해서 지나치게 바라고 기대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니까. 무조건 서로 사랑하고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며 잘해주다 실망이 쌓여 절망으로 이어질 때도 있으니까.
나는 언니가 현재, 지금의 상황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좋다. 한국에서 일할 땐 너무 힘들어 보였는데 지금은 일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언니니까. 가끔씩 만나면 더 애틋해서 잘해주고 싶기도 하다. 언젠가는 핑계 삼아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언니네 놀러 갈 수도 있을 거고.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언니와 형부, 조카들을 믿고 유학을 보낼 수도 있을 테니까.
좋은 것을 더 많이 생각해야지.
슬픈 상황도 팩폭과 유머로 극복해 봐야지.
그러다 너무 힘들면 꺼이꺼이 통곡하면서 슬픔도 잘 발산해야지.
그런데 오늘은 언니가 너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