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할까요?
회사의 독서모임 동호회에서는 월 1회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역시 의미 있게 다가올 때가 많다. 같은 책을 읽고도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던 그 자리에서만큼은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독서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의 내용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고, 생각이 정리되어 도움이 될 때도 많다.
4월 모임에서는 슈테판 츠바이크 님의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읽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이다. 돈이나 세상에 대한 욕심 없이 늘 남을 도와주고, 필요한 것 이상의 돈을 요구하지 않는 “안톤”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한 곳에 나타나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고, 큰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 진정한 호인이다. 이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일까?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해서 돈이 반드시 필요하고, 개인과 가족의 필요나 교육 등을 위해서도 추가적인 자본이 들어가는 세상인데?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서 이런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거야
안톤처럼 걱정 없이 살고 싶다
당장 내일의 먹거리조차 염려하며 살지 않는 삶이 과연 괜찮은 삶일까?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안톤이라는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을 돌아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생각해 낼 수 있고, 이 외에도 다수의 유명한 저서를 남긴 이 책의 작가님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글을 남기면서도 정작 슈테판 츠바이크 본인은 불행하고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시려온다. 전쟁과 독재로 물든 세상은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살아가기에 지나치게 잔인한 곳이었을까?
잔잔한 감동과 거대한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엄마와 아이가 나를 반겨준다. 엄마가 들려주는 아빠 소식을 들으며 슬퍼했다가,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하루의 기쁨을 채우기도 한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 불행의 크기를 의도적으로 재단하지 않고 있다. 어떤 감정이든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놓아 버림>의 기술을 터득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야 내 감정을 다스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걱정이 1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감정의 노예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