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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성장러 김양 May 26. 2024

익숙해지는 하루하루

이렇게 끝나버리는 건 아니겠지?




"이번 학기만 끝나면 한국에 간다~~~~"


잠시라 할지라도....,


이 생각 하나만으로도 힘이 나는 한 학기였어요. 미국 생활을 한 번 해보겠다고, 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고, 나는 꼭 미국 대학원에 가서 석사학위를 받아 오겠다고, 잠도 줄이고 코피까지 쏟아가며 공부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국이 그리웠거든요.


"남들은 다들 못 가서 안달인 미국까지 가서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난리야?"


"왜 힘들어? 거기서는 공부만 하면 되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1도 공유해주지 않는 가족들의 비난과 질책이 이어져도 일단은 한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미칠 듯이 그리워서 왔는데 한국도 뭐 별거 없네?' 라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그냥 한국에서 사는 게 맞나 보다' 이던지,


둘 중 하나는 알게 될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무엇을 느끼든 상관없이 나머지 1년을 버텨나갈 힘이 생길 것 같았거든요.


5월 초, 학교에서의 모든 수업과 시험, 발표가 끝났습니다. 8월에 다시 돌아왔을 때 살 집을 정해서 계약하고,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짐과 차를 지인에게 맡겼어요. 그리고 가볍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잠시 채플힐이라는 도시에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제 곧 한국에 간다는 가벼운 마음과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이 공존하는 복잡한 심경이었지요.


'나 다시 안 돌아 올 수도 있어, 안녕, 채플힐'


이런 생각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도 당장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내 짐과 차는 알아서 처분해줘요’

라는 말도 구지 마음 속에서 꺼낼 필요가 없었죠.


바로 한국에 들어오려고 했지만 언니가 잠시 LA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 정도 언니와 지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니가 제게는 작은 한국이었고, LA 역시 그런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채플힐이 아닌,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는 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LA 공항에서 언니를 만나자마자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었어요. 우리가 이렇게나 친근한 자매였나? 싶을 정도였죠. 사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저의 세상에서 언니의 부재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언니가 존재했고, 한평생을 한 집에서 같이 살았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우리가 이렇게 오랜 기간(고작 9개월) 떨어져 지낸 시간이 처음이더라고요. 제가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떨어져 지낸 것이니까요. 언니라는 존재가, 친자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고, 결국엔 형제, 자매도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는 것들이 실감 나기 시작했어요.


"와, 너희 정말 친하구나?"


언니와 함께 저를 공항까지 픽업 나와준 언니의 선배가 우리를 엄청 우애 깊은 자매로 오해하기에 충분한 재회 현장이었습니다.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우리가 가까워진 것일까요? 서로 머쓱하긴 했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사이좋은 자매였답니다.



미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언니의 인터넷 개통과 은행 업무 등 각종 생활 업무를 처리해주고 나니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았어요. 언니가 출근하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기까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논문 준비를 할까 싶어 다운 받아놓은 각종 논문을 읽고, 영어공부를 더 집중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논문을 열면 머리가 멍~ 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자유 시간이 왔는데도 즐기지 못하는 제 자신이 한심했지만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 잠이 오면 자고, 술이 땡기면 술을 사 와서 마시고, 산책이 하고 싶으면 나가서 무작정 길거리를 걸어 다녔죠.


"I love your dress"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와 달리

"Thank you"

라고 웃으며 답하는 정도의 여유는 생긴 것 같아 한편으론 위안이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흘러가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을 드라마 시청으로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위기의 주부들"을 몇 번이나 되돌려 봤고, 한국에서 유행이었다는 "응답하라 1997"을 정주행 했어요. 원래는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편이라 내용이 궁금하면 1회와 마지막 회만 봤었는데 응답하라는 절대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보고 보고, 또 봤습니다. (저 원래 하나만 파는 스타일 ㅋㅋㅋ) 사실 너무 중독될까 봐 드라마 시청을 외면해 왔는데 완전 드라마 중독의 세계로 빠져든 거죠.


백수, 드라마 폐인의 세계에 빠져드니 방학동안 하고자 했던 "논문, 영어공부"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신기하게 별로 걱정이 되지도 않았어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었나봐요. 번아웃 뒤에 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까요?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5단계로 구분된다고 하는데 저는 거의 1단계 생리적 욕구에만 충실하며 살고 있었어요. 음식, 물, 공기, 수면 같은 것들만 채워가며 사는 삶을 말이죠. 가끔 2단계인 안전의 욕구까지 올라가긴 했지만 소속 및 애정, 존중, 자아실현과 같은 높은 단계의 욕구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습니다.


'나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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