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성장러 김양 May 19. 2024

좌절은 계속된다

이제 잘 들릴 줄 알았다고?


2학기가 시작되기 전 제 자신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개강 전 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시내에 나갔어요. 쇼핑몰을 서성이며 뭐라도 하나 사야지 생각했지만 막상 사려고 하니 마음에 드는 옷도, 신발도, 액세서리도,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레미제라블이 흥행이라는데 영화나 볼까 싶어 미국에서 처음으로 영화 티켓을 하나 샀습니다. 한글 자막 없이 영화를 보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군요.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던 건데 새해에 이렇게 첫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막연하게 2학기가 시작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이전보다 훨씬 잘 들리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1학기에 비해 수월해질 거라고요.


"2학기부터는 좀 나아져"

"첫 학기만 지나면 말도 좀 트이고, 더 잘 알아듣게 된다는 뜻인 거죠?"

"아니, 안 들리는 건 똑같아. 근데 뭔 말인지 알아듣는 눈치가 생겨"

"........"


박사과정 중에 있는 같은 과 한국인 선배의 조언을 믿지 않았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됐어요. 수업시간 내내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수업을 이해하지 못해 토론 수업에서 바보처럼 앉아있는 일상이 1학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문제없이 잘 작동하던 노트북까지 말썽을 부리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필통까지 잃어버렸어요.


'이곳에서는 뭐든 잘 되는 게 하나도 없으려나보다' 생각하는 게 미국에서의 일상이 되어가더군요.

이렇게 살려고 힘들게 공부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이렇게나 못 알아듣는 수업을 듣겠다고 이 돈을 쓰면서 여기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닌데,

여기에서 소비하는 시간과 돈이 모두 낭비처럼 느껴졌어요. 정신을 차리면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아 좌절하고,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그나마 초연하게 되는 하루하루였습니다.


그 와중에 학교 캠퍼스의 클래식한 부분과 현대적인 건물을 비교하는 과제가 있어 학교 전체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도 남길 수 있었어요.


Old We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우리 학교 캠퍼스가 이렇게나 크구나,

몰랐는데 정말 예쁜 곳이 많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디서나 활기차고 밝아 보이는구나,


나도 여기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을까?


Campus of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이즈음 삶은 어디에서나 받아들이기 나름이고,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이 학교는 나의 전공인 "도시계획"으로 유명한 곳이고, 미국 최초의 주립대학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니,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어떻게 살지 정한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고요.




긍정의 생각이 스며들어오면서 이곳에서 보다 더 잘 생활하기 위해 가장 먼저 대인관계를 재점검했습니다.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주변의 한국인 친구들도 만들고자 노력했어요. 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Korean School의 선생님으로 지원했고, 한국인 커뮤니티를 통해 박사과정 중에 있는 동갑내기 부부와도 인연을 맺을 수 있었어요. 혼자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움을 친구 삼아 고독을 벗 삼아 지내는 삶이 내 삶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혼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지독하게 외로웠습니다. 한국에서 느끼는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어요. 주변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스스로 교류를 미루는 것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방이 문으로 막혀있어 마음이 통하는 친구 한 명을 만드는 것조차 힘든 상황은 분명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친구들을 사귀면서 채플힐에서의 삶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전반적인 제 삶도 조금씩 나아졌어요. 역시 모든 삶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 났습니다.


학교 근처에 첫 한인식당이 들어서면서 마음의 위안도 얻을 수 있었어요. 한국이 그리워질 때마다 그곳에서 돌솥비빔밥을 먹으며 한국의 고추장 맛을 떠올렸습니다.   

  

5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여름방학에는 미국에 머무르며 인턴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의 재충전이 더 간절했어요.

고맙게도 남자친구가 비행기표를 사 줄 테니 한국에 오고 싶으면 방학 때 나오라고 하더군요. 염치없지만 그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매일같이, 하루에 수백 번씩 그리워한 한국인걸요.

한글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곳,

내나라 한국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곳,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에서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워낼 수 있는 바로 그곳,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렸던 각종 혜택과 사랑, 인간관계,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너무너무 그리웠어요.


매일매일 비행기표를 검색하며 다가올 여름방학을 기다렸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