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생은 이별의 연속
언니, 잘 가
아빠 장례식을 위해 한국에 와있던 언니가 떠났다. 한 달 간의 휴가를 마치고 홀연히. 캐나다는, 언니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돌아가시면 최대 두 달까지도 유급 휴가를 준다고 했다.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직장에서 주는 "5일의 상조 휴가"가 터무니없이 느껴졌다.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일주일은 정말 짧다는 사실을 이렇게 또 알게 됐네.
엄마와 함께 언니를 공항까지 바래다줬다. 아빠가 아프신 동안 언니가 몇 번이나 한국에 왔어도 나는 언니를 공항까지 배웅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나가기도 했고, 언니의 시동생이나 다른 가족들이 갈 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굳이 휴가를 낼 생각을 안했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시키는대로 연차를 냈다.
"내가 공항에 데려다줄게...."
우리가 함께 겪은 이 시련의 크기를 공항에 함께 가는 걸로 줄일 수는 없겠지만 그냥 같이 가고 싶었다. 엄마 집에서 함께 출발해 간단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마치 내일 다시 볼 사람들처럼 공항의 카페에 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음료도 마시고, 쿠키도 먹었다.
"언니, 잘 가. 지금 언니 심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일테니까 힘들면 언제든 연락해"
"응...."
언니는 뒤도 안돌아보고 게이트를 지나 엄마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2019년 언니네 가족이 이민을 떠나던 날, 아빠가 눈물을 훔치면서 이제 살아서 언니를 몇 번이나 더 보겠냐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도 2019년에는 펑펑 울었다. 공항에서도 울고, 집에 와서도 울었다. 조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였다.
2025년 5월,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아빠가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언니는 하늘을 가로질러 이제 언니의 "집"이 된 캐나다로 돌아간다. 엄마는 또 눈물을 흘리셨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우리는 평생 남은 시간을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겠지만 그래도 연락은 할 수 있으니까. 영상 통화도 할 수 있으니까. 카톡도 가능하고, 언제든 안부도 물을 수 있으니까.
이게 영원한 이별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