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또 하루하루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져
후회와 회한, 미안함, 서러움, 안타까움, 보고 싶은 마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아빠를 그리워한다.
아빠가 안 계시니까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살아계실 땐 안부 전화 한 번을 안 드렸는데,
가족 단톡방에서도 아빠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언니랑 나도 굳이 아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설사 아빠한테 궁금한 게 있어도 엄마한테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아빠에게 궁금한 것도 별로 없었다. 아빠의 흑색종암 재발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린 정말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었다. 특별한 갈등도 없었지만 애써 배려하거나 관심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연결고리는 언제 이렇게 끊어져버린 걸까?
왜 나는 노력하지 않았을까?
"매일 다른 종류의 슬픔이 찾아와"
"나도 그래"
나와 가장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언니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크게 추억할 일이 없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슬픔을 나눈다.
"아빠가 너네 어렸을 땐 산에도 데려가고, 잘 놀아주고 했는데...."
엄마는 어떻게든 나와 언니와 아빠를 연결해 보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우리의 어린 시절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많이 남아있을 수도 없었다.
내가 지금 내 딸을 보면서 느끼는 귀여움, 사랑스러움, 예쁨, 그런 것들을 아빠도 느꼈을까? 물론 그랬겠지. 갑자기 아이의 환하고 행복한 얼굴을 보면서도 눈물이 흐른다. 아빠도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를 보면서 이런 기쁨을 느꼈을 거야, 하면서.
아빠한테 조금만 더 잘해드릴걸......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후회만 남았다.
"그래도 아빠가 나 직장에서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네가 뭐가 힘드냐고 할 땐 아빠가 미웠어"
우리 언니는 내가 들어도 약간 독특한 세계관이 깃든 직장을 다녔다. 언니 얘기를 들을 때마다 진짜 이런 일이 20세기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진심??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나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언니의 직장 이야기를 들으며 매번 놀랐지만 아빠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세상이 다 그렇다는 식이었다. 언니의 감정이나 기분보다 아빠 기준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언니가 그만둔다고 할까 봐 그걸 더 걱정했다. 언니는 큰 딸이었고, 늘 부모님의 기대에 충족하는 삶을 살았고, 본인도 그 직장을 관두면 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텼지만 나는 달랐다. 아빠가 한숨을 쉬든 말든,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든 말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직장도 아니다 싶으면 마음대로 그만뒀다. 가끔씩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나는 아빠한테 강하게 반발도 잘했다. 아빠는 대부분 내 이야기를 듣다가 조용히 힘을 다물곤 했고, 나와 전혀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 대한 원한이나 미움이 깊지는 않았다.
아빠의 부재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와 회환이 더 깊어진다. 좀 더 잘해드릴 걸, 좀 더 자주 연락할 걸, 좀 더 관심을 가질 걸, 하는 것들 말이다.
어떤 날엔 아빠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했을지를 가늠해 본다.
두 딸들 다 잘 커주고, 손자, 손녀까지 다 봤으니 여한이 없다고,
정말 열심히 잘 살았다고, 아빠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작게나마 아빠의 행복이 꽤나 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격변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든 중산층을 유지하며 자식들에게 괜찮은 교육을 제공하고자 했던 가장의 무게는 전혀 알 수 없겠지만.
갑자기 아빠의 희생과 성실함, 노력으로 내가 맘껏 누린 혜택이 미안하게 다가온다. 나는 아빠가 받지 못한 교육을 당당하고 당연하게 누리며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다르다 생각했다. 이제 그 죄책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짓누른다. 아빠가 부재한 이 세상에서.
"매일 다른 종류의 슬픔이 찾아와"
"나도 그래"
"어떤 날은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아빠도 어렸을 때 우리 보면서 행복했겠지, 하면서 슬프고, 우리는 왜 다정하게 지내지 못했을까, 후회되고, 좀 더 잘해드릴걸, 후회도 되고...."
"나도......"
"근데 잘해드렸고, 좋은 딸이었으면 후회가 없었을까?"
"아니......??"
그렇다. 좋은 자식이었어도, 우리가 화목하게 잘 지냈어도, 가족의 죽음 앞에서 후회와 슬픔이 없을 수 없다. 이 감정은 결국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든 살아지는 일상을 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