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탐구생활#13. 이십만 원
손에 잡히는 만큼 초를 꽂는다.
올해 생일도 가족과 보낸다. 조카가 촛불을 끄자 다 같이 박수를 친다. “갖고 싶은 거 사.” 생일선물로 이십만 원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물건보다 현금이나 상품권을 선물로 주고받는다. 나이 먹는 만큼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 뭔지 스스로 고민 좀 해보라는 듯이. 고민도 자기 몫이라는 듯이. 주머니에 이십만 원을 담아 은행에 간다.
20대의 마지막 생일이라고 해서 달라진 게 있다면, 하나 있다.
통장 잔고가 이십만 원 늘었다. 이때쯤 나는 독립해서 고양이를 키우고, 업계에서 인정받는 프리랜서가 되고, 연애의 달인이 돼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의 나는 가족과 살며 공과금을 언제 수납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막 신입 딱지를 뗐고, 이성과 단둘이 있는 걸 어색해한다. 무엇보다 어른이 돼 있을 줄 알았지만 그건 40대가 되도 어려울 것 같다.
친구와 전화하면서 “벌써 스무살이라니, 징그러워”라고 말한 적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나이를 먹는 게 무서웠다. 당시 이 얘기를 엿들은 언니는 두고두고 놀린다. “웃기지도 않아” 하면서.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스물아홉 살이 됐다. 언니 말처럼 내 나이가 하나도 웃기지 않다.
어른이 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게 있다면 직접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왕좌왕하나보다. 학교에 다닐 때는 알림장을 썼다. 선생님은 꼭 필요한 것만 가져오라고 했고, 모두 문방구에서 살 수 있었다. 지금은 필요한 것도 구할 수 있는 곳도 나의 노력과 선택에 달렸다. 잘하면 내 덕이고 못하면 내 탓. 선생님을 자처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어떤 책, 어떤 영화, 어떤 교수들은 나이 듦의 기준과 교훈을 내세운다. 어떤 기준에 대해 주구장창 이야기하다 마지막에 이르러 ‘너의 삶을 살아’라는 말만 안 해도 좋겠다.
적어도 숫자와 어른스러움은 별개다.
그러면 좋겠다. 통장 잔고와 연봉, 주변 사람들의 평판 대신 내 기준을 세우고 싶다. 우선은 익숙한 일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그중 하나는 기념일을 아등바등 챙기는 일이다.
기념일을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미리 계획을 세웠다. 친구나 애인과 약속을 잡았고, 평소 마시는 술의 두 배는 넘게 마셨다. 근교 여행도 다녀왔다. 평소와 다르게 보내야 특별한 것이라고. 특별하게 보내는 만큼 나도 특별한 사람인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날 뭐했어?”라는 질문에 우물쭈물 답하기 싫었다.
선물과 축하 메시지가 쌓이는 만큼 나도 바빴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했다. 친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선물을 고르는 것도 모자라 그 사람이 선물 포장을 뜯을 때까지 전전긍긍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남은 건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선물과 그 사람들의 빈자리다.
어쨌든 덜어내고 있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고심하는 것을 덜어낸다. 사실은 먼저 연락하려고 아등바등하는 내 자신이 가여워 쉬게 해주고 있다. 먼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덜어낸다. 정작 내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말 걸어주는 사람이 적다는 걸 알았다. 통장 잔고도 덜어낸다.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 곳에도 간다.
반강제적으로 밀려난 것도 있지만, 모쪼록 밀려난 곳에서 지내고 있다. 스물아홉이나 서른이나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서른아홉이나 마흔도 마찬가지다.
계속 덜어내서 꼭 어른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어른스럽다고 칭찬받고 싶지 않다. 단지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남들과 비교하면서 우울해지지나 않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래서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