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탐구생활#14. 엄마 휴대전화
엄마와 마트에 다녀와서 꼬박 잤다.
진동이 울렸다. 뒤척이다 휴대전화를 봤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계속 진동이 울렸다. 외투 주머니를 뒤져보니 엄마 휴대전화가 들어 있었다. 엄마는 내게 휴대전화를 건네받고 그 너머로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응, 창원 엄마.” 친구 사이에는 서로 이름을 부를 법도 한데. 다시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는 내 주머니에 휴대전화며 지갑을 잘 넣는다.
짐 될 거 뭐하러 가방을 메냐면서 내 주머니를 부풀린다. 혼자 외출할 때도 가방을 잘 메지 않는다. 휴대전화와 동전 지갑, 가끔 휴지 정도만 챙긴다. 우리 엄마도 가방에 립스틱을 담고 다녔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다. 그건 엄마 입술이 창백하기 때문도 수수한 모습이 부끄러워서도 아니다. 그냥 한 번쯤 가방에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봤으면 좋겠다.
엄마의 가방에는 반찬이 들어 있다.
내가 중학교 때 멘 검은색 백팩인데 몸집이 커버린 뒤로는 메지 않았다. 사실은 다른 브랜드 가방이 갖고 싶었다. 이 가방은 어느샌가 엄마의 출퇴근길을 함께하고 있다. 엄마는 오히려 몸집이 작아지는지 그 가방이 작아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는 여기에 시금치를 담아 가고 오후에는 시금치 무침을 담아 온다. 엄마가 일하는 곳에는 전기 레인지가 있어서 점심에 밥을 지어 먹고 반찬도 만든다고 한다. 한가득 반찬을 만들어오는 날이면 꼭 반찬통을 꺼내 보여준다. “너 좋아하는 거”라면서.
시금치 무침, 구운 김, 깐 밤. 차라리 엄마가 식탐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엄마는 가방을 채우면서 든든했을까. 나는 덜 미안했을까.
엄마의 우선순위는 늘 가족이다. 반찬을 만들거나 물건을 살 때도 자신의 취향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다. 헌신적인,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이런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모든 엄마가 이런 수식어에 맞게 살지도, 수식어에 맞춰 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게 가족이라는 사실이 좋다. 든든하고 고맙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좋아할 줄 아는 게 우리 가족뿐이라는 사실이 싫다.
엄마는 가방 지퍼를 연 채 식탁에 둔다.
자기 물건은 없다는 듯이. 학창시절 내가 가방 깊숙이 라이터를 숨긴 것처럼 엄마도 가방 깊숙이 물건을 숨긴 적 있을까.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있을까.
엄마는 변한 게 아니라 포기한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내 나이 때 찍은 사진을 봤다. 당시 평균 키보다 크고 날씬한 몸매에 머리카락은 굵게 파마를 했다. 엄마는 가죽치마에 롱부츠를 신고 있었다. 당장 지금 입고 나가도 손색없어 보였다. 원래는 그 가죽치마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 취향대로 리폼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옷을 고를 때 기준이 엄격하다. 티셔츠 한 벌을 사려고 해도 소재와 색상, 품, 길이가 모두 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 겨우 취향에 맞는 옷을 찾아 계산대 앞까지 갔다가 돌아선 적도 많다. 그 돈으로 장을 보고, 저렴한 옷 두 벌을 산다.
엄마가 포기하지 않는 게 있으면 좋겠다.
화분을 모아도 좋고, 주말마다 찜질방 투어를 가도 좋다. 우리 몰래 황혼 이혼을 계획 중이라도 좋겠다.
그런 물건 하나쯤, 아니 비밀스러운 이야기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