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왜 바나나가 남아 있어?”라고 물어봤다가 오히려 “그게 왜?”라는 질문을 받았다. 우리 집에서는 식탁에 음식이 놓여 있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썩었다면 몰라도. 친구 물음에 내가 대답할 차례였는데,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웠다. 대신 바나나 한 개를 달라고 했다.
나는 식구가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 할머니와 부모님, 네 자매까지 일곱 명이 한솥밥을 먹었다. 국그릇이 따로 없었다. 일곱 식구의 몫을 하나하나 내놓기에는 그릇이 부족했다. 냄비를 가운데 놓고 함께 먹었는데, 고깃국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나와 언니들은 서로 건더기를 건져 먹으려 젓가락을 휘휘 저었다.
어쩌다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오면 나는 냉동고 구석에 숨겼다. 비닐봉지로 감쪽같이 가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이면 사라졌다. “누가 먹었어?” 소리를 질러도 범인이 손을 들 리 없었다. 나는 쓰레기통을 뒤져 아이스크림 빈 봉지를 쥐고 울었다. 이후로는 나도 냉동고 구석을 더듬었다.
내 꿈은 소박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통을 혼자 먹어보기. 한 입씩 음미해보고 싶었다. 용돈을 모아 아이스크림을 사오면 언니들은 숟가락을 들고 내 옆에 왔다. 우리에게 ‘식사 때’라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내 입으로 사라지는 게 마음 편했다. 꽤 어린 나이에 ‘아끼면 똥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몸으로 배운 셈이다.
나는 익숙하게 먹었다.
지금도 맛없는 음식과 맛있는 음식 중에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는다.국을 먹을 때는 건더기를 밥만큼 건져 먹는다. 또 몇 번 씹지 않고 넘겨버린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음식은 일단 먹고 마는데, 우리 식구는 일곱에서 넷이 됐다.
부모님과 둘째 언니, 그리고 나. 네 식구가 사는 집에는 그릇이 쌓여 있다.
이사를 오면서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찬장에 가득하다. 밥 먹은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주방을 둘러본다. 식탁 위에는 먹다 만 과자가 있고, 냉동고를 열자마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보인다. 구석에 손을 밀어 넣자 살얼음 낀 다진 마늘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