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요령이 있지 않다. 중간이나 기말시험을 앞두고서는 벼락치기로 달달 외웠고, 외우는 방법도 베껴 쓰는 정도. 대학생 때는 시를 잘 쓰고 싶었다. 동시에 자랑하고 싶었다. 현대시의 정의라던지, 배경에는 어떠 시인들이 있었나를 달달 외우고 싶었다. 그러나 단순히 이론 서적을 여러 번 읽고 그대로 베껴 쓴다고 해서 외워지지는 않더라. 여러 번 이 공책들을 버리려고 했으나, 왠지 이 공책을 버리는 게 지식마저 버리는 거라 여겨졌다. 이 안에 적힌 내용들을 지금은 하나도 모르는데 말이다. 공부한 '흔적'을 갖고 있을 게 아니라, 다시 책을 펼쳐서 읽어 내려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참. 학교를 졸업하자 나에게는 공부할 거리가 사라졌다. 시험 기간과 시험지, 그에 따른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남들처럼 일하면 그만이지 싶었다. 그런데 남들이 다 나 같진 않더라. 누군가는 영어 공부를 하고, 인테리어를 배우고, 와인에 대해 배우는 사람도 있었다. 일하고 밥 먹고 자고 가끔 술 먹는 나 말고, 무언가를 향해 부지런 떠는 내가 필요했다. 보고 싶었다.
한 일주일 전부터 아침 한 시간을 무엇이든 공부하는 데 쓰고 있다.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아 그저 앉아 있는 데 의의를 두고 있기는 하다. 이 공책을 다시 펼치면서, 나는 하루 한 시간을 시 쓰는 데 할애하기로 다짐했다. 작법 책도 펼치고 철학 책도 읽어야겠다. '무언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무엇이든' 보내는 한 시간의 목적이 정해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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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에 꿈 얘기가 적혀 있었다. 중언부언, 비몽사몽.
엄마는 내게 초등학교에 가라고 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눈은 지면을 덮고, 부풀어 오르고, 또 단단해졌다. 결국 나는 엉금엉금 기어 학교로 갔다. 구덩이에 발이 빠지고, 짚은 손가락을 바늘에 찔리며 나는 학교 가는 것이 고난하였고 집으로 와 하루 종일 기었으나 눈이 많이 와서 못 간다고 했다. 사실은 한 시간 남짓 시도했을 뿐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의식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유치원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아, 내가 갈 곳, 유치원. 유치원이다. 우리는 조별로 앉았고 나는 내 의자가 없는 것에 화를 냈다. 우리는 비장한 무언가를, 아, 라면을 먹고 알아맞추는 것으로 팀 내에서 순위를 정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못 적겠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