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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Nov 05. 2020

201104-05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갔던, 대학 시절 공책


오늘의 비움, 대학 시절 사용한 공책

공부에 요령이 있지 않다. 중간이나 기말시험을 앞두고서는 벼락치기로 달달 외웠고, 외우는 방법도 베껴 쓰는 정도. 대학생 때는 시를 잘 쓰고 싶었다. 동시에 자랑하고 싶었다. 현대시의 정의라던지, 배경에는 어떠 시인들이 있었나를 달달 외우고 싶었다. 그러나 단순히 이론 서적을 여러 번 읽고 그대로 베껴 쓴다고 해서 외워지지는 않더라. 여러 번 이 공책들을 버리려고 했으나, 왠지 이 공책을 버리는 게 지식마저 버리는 거라 여겨졌다. 이 안에 적힌 내용들을 지금은 하나도 모르는데 말이다. 공부한 '흔적'을 갖고 있을 게 아니라, 다시 책을 펼쳐서 읽어 내려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참. 학교를 졸업하자 나에게는 공부할 거리가 사라졌다. 시험 기간과 시험지, 그에 따른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남들처럼 일하면 그만이지 싶었다. 그런데 남들이 다 나 같진 않더라. 누군가는 영어 공부를 하고, 인테리어를 배우고, 와인에 대해 배우는 사람도 있었다. 일하고 밥 먹고 자고 가끔 술 먹는 나 말고, 무언가를 향해 부지런 떠는 내가 필요했다. 보고 싶었다.


한 일주일 전부터 아침 한 시간을 무엇이든 공부하는 데 쓰고 있다.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아 그저 앉아 있는 데 의의를 두고 있기는 하다. 이 공책을 다시 펼치면서, 나는 하루 한 시간을 시 쓰는 데 할애하기로 다짐했다. 작법 책도 펼치고 철학 책도 읽어야겠다. '무언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무엇이든' 보내는 한 시간의 목적이 정해진 것뿐이다.

 


+

공책에 꿈 얘기가 적혀 있었다. 중언부언, 비몽사몽.


엄마는 내게 초등학교에 가라고 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눈은 지면을 덮고, 부풀어 오르고, 또 단단해졌다. 결국 나는 엉금엉금 기어 학교로 갔다. 구덩이에 발이 빠지고, 짚은 손가락을 바늘에 찔리며 나는 학교 가는 것이 고난하였고 집으로 와 하루 종일 기었으나 눈이 많이 와서 못 간다고 했다. 사실은 한 시간 남짓 시도했을 뿐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의식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유치원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아, 내가 갈 곳, 유치원. 유치원이다. 우리는 조별로 앉았고 나는 내 의자가 없는 것에 화를 냈다. 우리는 비장한 무언가를, 아, 라면을 먹고 알아맞추는 것으로 팀 내에서 순위를 정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못 적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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