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서 나 준, 묘사 수첩
오늘의 비움, 간지러운 묘사 수첩
역시 고등학교 때 사서 몇 번 안 쓰다가, 대학에 가서 이어 쓴 수첩이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시를 잘 쓰고 싶었다. 수첩에 하루에 다섯 줄씩 묘사를 채웠다. 묘사를 하려면 먼저 관찰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남자의 정수리를 빤히 쳐다봤고, 야밤 산책로를 걷다가 희미한 바퀴 자국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때만큼 간절하지 않은 건지, 나는 전처럼 주변을 관찰하지 못한다. 나는 당장 횡단보도 빨간불도 보지 못할 만큼 시야가 좁다.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가 주변의 그 어느 것보다 크다. 뭐, 크기는 하지.
최근에도 다시 묘사 수첩을 적다가 다시 멈췄다. 더 이상 주변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싶어 울적해졌다. 잊지는 말자. 이 수첩에 적어 내려 간 장면 중 일부는 시가 됐고, 나머지는 오늘의 기록이 됐다. 새로운 기록을 기대하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