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루 비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씨방 Nov 10. 2020

201110

어쩌다 여행 수첩


오늘의 비움, 어쩌다 여행 수첩
귀여워서 샀는데 막상 손에 익지 않아 내버려 둔 것이다. 당연히 빈 종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웬걸. 나의 첫 해외여행, 엄마의 환갑을 기념해 간 가족 제주도 여행, 엄마와 단둘이 나선 부산 여행 일정이 조각조각 담겨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정을 썼다 지웠다 하기에 이 방치된 수첩만큼 만만한 게 없었나 보다. 여행할 때마다 챙기는 휴대용 수첩과는 또 다르다.
종이를 넘기다 보니, 첫 해외 여행을 앞두고 ‘바우처 두 장씩 출력하기’라던지 ‘여권 사진 챙기기’ 같은 내용을 적어 놓았더라. 바야흐로 2016년, 나는 베트남 다낭으로 떠났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여행 경비였고, 또 여행 정보가 많아서 혼자 나서기에 덜 두려웠다. 나름 철저했지만 사기를 당했다. 한 택시 기사는 호이안 시내에서 안방 비치까지 가는 택시비를 열 배 받았다. 이천 원도 안 되는 거리를 만 원으로 간 것. 나는 안방 비치에 내리고 나서 이 사실을 깨닫고, 복수할 방법을 궁리했다. 다행히 내겐 택시 기사 명함이 있었다. 나는 식당 직원에게 팁을 주며, 사기를 당했으니 택시 회사에 대신 항의를 넣어달라고 했다. ‘용서하지 않겠어!’라는 마음뿐이었다. 얼마 후 택시 기사가 왔다. 미안하다며 내게 잔돈을 쥐어 주고-경황이 없어 인식하지 못했지만 팔천 원 줘야 할 걸 오천 원만 줬다-, 돌아갈 때도 자기 택시를 타라고 했다. 다음 전개가 예상되는가. 나는 택시비로 그 기사에게 받은 오천 원을 몽땅 줬다. 그러니까, 열 배로 사기당한 걸 다섯 배쯤으로 낮춘 꼴이랄까. 택시 기사에게 고맙다. 덕분에 나는 택시를 탈 때 미터기를 주시하게 됐다. 됐다, 그래.


매거진의 이전글 20110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