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비움, 어쩌다 여행 수첩 귀여워서 샀는데 막상 손에 익지 않아 내버려 둔 것이다. 당연히 빈 종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웬걸. 나의 첫 해외여행, 엄마의 환갑을 기념해 간 가족 제주도 여행, 엄마와 단둘이 나선 부산 여행 일정이 조각조각 담겨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정을 썼다 지웠다 하기에 이 방치된 수첩만큼 만만한 게 없었나 보다. 여행할 때마다 챙기는 휴대용 수첩과는 또 다르다. 종이를 넘기다 보니, 첫 해외 여행을 앞두고 ‘바우처 두 장씩 출력하기’라던지 ‘여권 사진 챙기기’ 같은 내용을 적어 놓았더라. 바야흐로 2016년, 나는 베트남 다낭으로 떠났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여행 경비였고, 또 여행 정보가 많아서 혼자 나서기에 덜 두려웠다. 나름 철저했지만 사기를 당했다. 한 택시 기사는 호이안 시내에서 안방 비치까지 가는 택시비를 열 배 받았다. 이천 원도 안 되는 거리를 만 원으로 간 것. 나는 안방 비치에 내리고 나서 이 사실을 깨닫고, 복수할 방법을 궁리했다. 다행히 내겐 택시 기사 명함이 있었다. 나는 식당 직원에게 팁을 주며, 사기를 당했으니 택시 회사에 대신 항의를 넣어달라고 했다. ‘용서하지 않겠어!’라는 마음뿐이었다. 얼마 후 택시 기사가 왔다. 미안하다며 내게 잔돈을 쥐어 주고-경황이 없어 인식하지 못했지만 팔천 원 줘야 할 걸 오천 원만 줬다-, 돌아갈 때도 자기 택시를 타라고 했다. 다음 전개가 예상되는가. 나는 택시비로 그 기사에게 받은 오천 원을 몽땅 줬다. 그러니까, 열 배로 사기당한 걸 다섯 배쯤으로 낮춘 꼴이랄까. 택시 기사에게 고맙다. 덕분에 나는 택시를 탈 때 미터기를 주시하게 됐다. 됐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