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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Nov 16. 2020

201114-15

학창 시절 공책이 왜 이리 많아


오늘의 비움, 학창 시절 쓴 필사 공책과 시작 공책

참 이상한 일이다. 학창 시절에 공책을 많이도 썼다. 마지막 장까지 다 채우지 못한 탓도 있지만, 여러 권 쓸 만큼 기록을 많이 했다. 지금은 하루에 한 줄씩 남겨두기도 힘들다. 의식하지 않으면 곧잘 잊어버린다. 내가 가벼워지지 못하는 것도 다 '많이 쓰던 날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과거를 그만 그리워해도 좋으련만. 지금 하면 될 걸.

두 권 다 2006년에 쓴 것이다. 왼쪽은 필사, 오른쪽은 시작 공책이다. 필사 공책에는 다음 시인들의 시가 적혔다. 순서대로 조연호, 기형도, 황동규, 권혁웅, 안현미, 이덕규, 황병승, 최승호, 박인숙, 정재학, 김경주, 김기택. 박인숙 시인이 그때도, 지금도 좋다. <비유들>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꽃을 따면 겨울비가,
물고기를 따면 쓸쓸한 얼룩 같은 것,
바람을 따면 사라진 것들의 물기가 촘촘하게 고여 있었다

기억의 저장물은 모두 캔 모양을 띠었다


좋은 비유이자 두고두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비유다.

지금도 가끔 필사를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분명한 이유에서다. 좋아서, 훔치고 싶어서. 섬세하고 예민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 부럽다. 한 걸음 떨어져서 문장을 쓰는 사람이 부럽다. 내 마음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문장들이 참 많다. 필사를 하며 한 가지 분명한 것도 생겼다. 필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꼭 말을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른쪽은 시작 공책이다. 말 그대로 시를 끄적거렸다. 지금은 안 써서 잘 모르지만, 시를 쓸 때 버릇이 있다. 쓰다가 마음에 안 들면 지우는 대신 처음부터 다시 쓴다. 여기엔 그 버릇이 그대로 담겨 있다. 에버노트에 옮겨 적고서 잘 보내줘야겠다. 걱정이다. 벌써부터 에버노트에 옮겨 적어야 할 다른 공책들이 눈에 보인다. 버린다면서 다는 못 버리네.


왼쪽 <단검처럼 스며드는 저녁 햇살> 이덕규 시인 / 오른쪽 고1 때 시작 공책, 배치가 왜 이렇게 수치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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