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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루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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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Nov 25. 2020

201125

낙엽이 된 가방


오늘의 비움, 이래 봬도 가방입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가방 무덤에서 꺼낸 천 쪼가리, 아니, 나의 가방. 네모나고, 까맣고, 조금 추레하다. 나의 가방들이 일관적인 걸 보니, 어쩌면 나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분명하지만 분별하기는 어려운 취향일지 모르겠다. 새 가방을 들고 나가면 지인들은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다. “나 가방 샀어” 말해야 “예쁘다”고 답해준다. 이 정도로 만족한다. 해야지 어쩌겠어.
 
지난해 봄 구매한 이 가방은 다른 가방에 비해 나와 함께한 시간이 짧다. 얼핏 무난해 보이지만 내적 관종답게 특이한 부분에 반해 산 것이다. 평상시에는 한쪽 어깨에 매는 네모나고 까만 가방이다. 하지만 양옆의 끈을 잡아당기면 가방 윗부분 고무줄이 오므라들면서 배낭으로 변신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노렸는데, 정도가 심했는지 출가한 스님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불편한 점도 있었다. 가방 양옆에 달린 끈이 자전거 핸들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이 정도 단점이야 눈 감아 주려 했는데,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됐다.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됐나 보다. 바스락거리고 색도 쫙 빠져 낙엽 같다. 졌다.
 
또다시 네모나고 까맣고 추레한 가방을 사겠지만, 그때는 덜 불편한 걸 골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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