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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루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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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Nov 29. 2020

201128-29

옷으로 재탄생할, 내 것 같지 않았던 내 가방들


오늘의 비움, 타의적 내 가방

결혼해 출가한 언니는 우리 집에 오며 이따금 "야, 이거 어때?" 하고 옷이며 가방을 보여준다. 꼭 집 정리를 하고 난 내 친구 같다. 딱히 예쁘지도, 그렇다고 실용성 있지도 않은 물건을 눈앞에 흔들며 쇼호스트처럼 소개한다. 언니가 갖기는 싫고 버리기는 귀찮은 물건을 가져온 게 뻔한데, 언니의 말이 끝날 때 즈음에는 내 방에 차곡차곡 쌓인다. '집 앞에 잠깐 나갈 때'라는 가정과 '언젠가'라는 오지 않을 날 때문이다. 끝내 그날들은 오지 않았다. 아니 수백 번 왔지만, 단 한 번도 그 물건들을 떠올려본 적 없다.


토요일에는 하얀색 손가방, 오늘은 파란색 손가방을 비웠다. 내게 하얀색 손가방을 건넬 당시 언니는 "원피스에 딱!"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입고 다니는 옷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파란색 손가방을 건넸을 때는 "여행 갔을 때 딱!"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행 갈 때 무조건 수납공간이 많은 걸 맨다. 언니가 갖기 싫은 물건은 나에게도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이 가방들은 쓰레기통 대신 인형 좋아하는 둘째 언니 손에 전해졌다. 겉감을 벗겨 인형 신발이나 옷을 만들어야겠다고 한 것. 어지간히 버리기 아까워한다. 하지만 꽤 좋은 생각 아닌가. 간헐적으로 실행력 좋은 언니 덕분에 하얀색 손가방은 바로 손질됐고, 내일이면 파란색 손가방도 손질될 것이다.




하루 비움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번 주말에는 여러 개를 비웠다. 내 방 장롱에 있는 엄마 옷들을 엄마 방에 걸어놓고, 내 방 책꽂이에 있는 출가한 언니의 책들을 그 집으로 돌려보냈다. 비로소 내 방-둘째 언니와 함께 쓰기는 하지만-이 조금 내 방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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