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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May 15. 2019

글_07

태은의 과거_2

그는 나를 소파에 앉혀놓고 서랍을 뒤적이더니 옷을 하나 꺼내 내게 주었다. “욕실은 저쪽이에요. 편하게 갈아입으시고 저는 그동안 근처 약국에 다녀올게요.” “아, 괜히 저 때문에 불편하신 건 아닌지….” “아니에요. 제가 초대했는걸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하죠.” 그는 다시 신발을 신고 나갔고, 나는 그가 알려준 대로 욕실로 가서 축축한 옷을 벗어놓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로 가볍게 씻고 나왔다. 그의 옷은 내가 입기엔 조금 컸지만 포근한 냄새가 나서 마음이 안정되었다.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을 때 마침 그가 들어왔다.


“제 옷이 꽤 잘 어울리시네요.” “그런가요?” 나는 웃으며 길어서 내 손을 다 덮어버린 소매를 들어 보였다. 그도 나를 따라서 환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 나는 비가 그치고 해라도 뜬 줄 알았다. 그는 내 옷을 옷걸이에 걸어 제습기 근처에 걸어놓고 약국에서 사 온 봉지를 들고 내가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와 바닥에 앉았다. “발 좀 보여줄래요?” 나는 방금 만난 남자에게 내 발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하는 것도 우스웠기에 살며시 발을 그에게 내밀었다.


“제 이름은 지훈이예요. 태은 씨.” 발에 닿는 지훈의 손은 따스했다. 그는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꼼꼼히 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반창고를 붙였다.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이 좋았지만, 따뜻한 방에서 따스한 손으로 나를 돌봐주고 있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난 지금 사랑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고,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창고를 다 붙인 그는 내 옷의 소매를 접어 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의 눈에 눈을 맞추었다. 지훈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나는 피할 생각 없이 그의 스킨십을 받아들였다. 알고 있는 거라곤 그의 이름뿐이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덜 마른 머리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져 소파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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