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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Mar 05. 2016

몽유병

산문_002

잠들어 있는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는 고단했던지 금세 잠이 들었고 나는 잠든 너를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길게 뻗은 속눈썹, 앙증맞게 올라온 코, 적당한 볼륨감이 있는 입술까지 나의 시선으로 너를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잘 자는듯 싶던 네가 별안간 눈을 뜨더니 나의 손을 잡고 희미하지만 절박한 목소리로 "같이 갈거야...나 너랑 같이 갈래."라며 얘기했다. 이윽고 너는 나를 끌어당겨 걷기 시작했다. 너는 우리의 주변에 널려있는 깨진 마음의 파편은 보이지 않는지 날카로운 조각 위로 거침없이 발을 내딛었고, 네 발은 찢긴 상처로 뒤덮였다. 나는 너를 그 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너는 그저 어딘가를 바라보며 막을 수 없는 힘으로 계속해서 걸으려고 했다. 다치는 너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제발 가지 말라고, 그 쪽으로 가면 네가 다친다고 소리치기도 힘껏 외치기도 했지만 나 혼자만의 발악에 불과했다.


한참동안 반복하던 너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두 눈에 흐르던 눈물로 너의 상처를 닦아내고 혹여나 네가 또다시 잠에서 깨어나 나를 보고 똑같은 고통을 선택하지 않도록 흐트러진 파편을 모아 내 속에 고이 간직한 채 네 곁을 떠났다.


잠에서 깨어난 너는 간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나를 잊을지 몰라도, 나는 나의 흔적들을 치우고 내가 너에게 보이지 않은 것이 네게 안전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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