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레베카> 속 레베카의 매력
극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제목을 차지한 여인이 있다. 바로 뮤지컬<레베카>의 '레베카'다.
Rebecca
동명의 영화<레베카>는 스릴러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이 특별전을 할 때마다 반드시 상영되는 영화이다. 1938년 출판된 소설은 2년 후인 1940년에 히치콕이 영화로 개봉하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영국 맨덜리의 소문난 귀족인 막심은 1년 전 요트 사고로 아내 레베카를 잃는다. 불의의 사고 후 집에 머물지 못하고 여행 중이었던 그는 몬테카를로에서 나(I)를 만나게 된다. 시중드는 귀부인의 여행에 따라온 나(I)는 막심과 서로 마음을 키워나가고, 환경이 너무나도 달라 이뤄질 수 없는 관계라 생각한 것도 잠시, 막심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막심의 '맨덜리 저택'에 돌아오고나서부터 시작된다.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사 댄버스 부인은 본인이 모셨던 '레베카'가 얼마나 대단한 안주인이었는지를 계속해서 나(I)에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안주인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댄버스 부인에게 하녀가 없는 나(I)는 너무나도 쉬운 상대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믿었던 남편 막심도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
나(I)는 맨덜리 곳곳에 남겨진 레베카의 덫을 풀어낼 수 있을까?
이야기는 '나(I)'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관객의 관심은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은 '레베카'에게 집중된다.
그런 관객에게 '레베카'를 그려내는 인물은 '댄버스 부인'이다. 레베카가 막심과 결혼하게 되면서 함께 맨덜리 저택으로 온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가 죽은 이후에도 맨덜리에 남아 저택의 모든 안살림을 총괄하고 있다.
그녀는 광적으로 레베카를 숭배한다. 그래서 우리는 댄버스 부인이 회상하는 레베카로 그녀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우아한 자태,
당당하고 영리한,
절대 길들일 수 없는 사람
댄버스 부인의 말만 들으면 이토록 매력적인 여인은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레베카가 맨덜리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으며, 그녀의 물건을 병적으로 관리하는 댄버스 부인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넘버 '레베카(Lange Fassung, 긴 버전)'는 이런 댄버스 부인의 그리움과 분노가 폭발하는 넘버이다.
극 중에서 넘버 '레베카'는 총 3번 불려진다. 첫 번째는 댄버스 부인이 나(I)에게 집을 소개해주면서 부르는 넘버로, 당장이라도 레베카가 곧 돌아올 것처럼 이야기하며 나(I)를 불안하게 만드는 곡이다.
반면 같은 선율로 다시 부르는 Lange Fassung(긴 버전)은 '내 마님은 이렇게 잘났다! 여긴 감히 너 따위가 대신할 자리가 아니야!'로 레베카의 '잘남'과 나(I)의 '역량 부족'을 격정적으로 표현하며 가창력과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다.
나(I)역에는 김보경 배우가 레베카와 너무나도 상반되는 순수하고 약한 나(I)를 표현해냈고, 댄버스 부인 역에는 레베카에 대한 애착을 풍부한 성량을 표현해낸 옥주현 배우가 넘버를 소화했다.
댄버스 부인은 역을 소화하는 배우들마다 느낌이 다른 역할이기도 하다.
두 배우의 댄버스 부인의 관람했었는데, 옥주현 배우의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를 애인처럼 생각했다면, 신영숙 배우의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를 딸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의 영상은 레베카를 딸처럼 생각하는 걸로 느껴졌던 신영숙 배우가 '레베카(Lange Fassung, 긴 버전)' 넘버를 소화한 영상이다.
같은 극이라도 배우의 해석에 따라서 다른 작품을 관람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더블 캐스팅의 매력이란 걸 제대로 보여준 두 배우였다.
이 작품은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원작이 된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바로 공연장으로 직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반전이 강한 작품이기 때문에 처음 느낄 반전의 충격을 뮤지컬에서 음악, 연기, 무대의 조합으로 즐겨보자. 그렇게 뮤지컬의 음악과 무대에 빠져 관람을 마치고 나면, 영화를 찾아 재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대에 부응하여,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80년 전 영화라는 것이 무색하게 이미 뮤지컬을 보고 왔음에도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소설은 우리가 공연과 영화를 통해 상상해 낸 레베카와 댄버스 부인의 이미지를 문자로 읽으며 다시 상상하는 재미를 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댄버스 부인과 등장인물들이 뮤지컬 혹은 영화 속 어떤 배우와 같았는지 떠올려보며 책을 읽다 보면 지루할 틈 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만날 것이다.
이 작품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다시 보는 사람도, 누구나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을 처음 관람하는데 어떤 작품 보는 것이 좋을지를 물어볼 때면 늘 <레베카>를 추천한다. 호불호 없이 멋진 무대와 강렬한 음악이 만족을 주는 작품으로 추천해준 모든 지인들의 만족스러운 후기를 들었다.
흐린 날이면 안개 둘러싸인 맨덜리 저택이 더더욱 생각나곤 한다. 오랜만에 뮤지컬<레베카>의 넘버들을 다시 들으면서, 레베카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을 펼치게 되는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