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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뎡 Oct 17. 2020

초록색도 프랑켄슈타인도 아닌, 이름 없는 괴물 이야기

책<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머리에 나사가 박힌 거대한 초록색의 생명체가 멍한 눈빛으로 버퍼링이 걸린 듯 더듬더듬 말을 이어간다. 그의 어설픈 몸짓과 거대한 덩치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바로 이게 우리가 기억하는 프랑켄슈타인이다.


 우리가 캐릭터로만 익히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이 아니다. 괴물을 만들어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사람이다. 우리가 캐릭터로 알고 있는 그 괴물은 이름이 없다. 그저 '괴물'일뿐.



연극 NT Live<프랑켄슈타인>


 제네바 최고 명문가에서 듬직한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 품에서 자라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부모님의 성품을 이어받아 친절하고 똑똑한 신사로 자라난다.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그는 유학 생활을 시작하며 생명의 원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생명 창조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연구에 매달린다. 그리고 끝끝내 자신이 바라던 대로 생명을 창조해낸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가 창조한 생명은 그의 상상대로 완벽했을까?



영화<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작가가 각을 제대로 잡고 써내려갔을 것 같은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가 친구들과 별장에서 비도 오는데 무서운 얘기나 해보자며 시작된다.


 당시 18살로 어렸지만 상상력이 풍부했던 그녀의 괴물 이야기는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를 느꼈다. 하지만 시대상 여성 작가는 흔치 않았다. 거기에 로맨스물도 아닌 괴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어린 여성의 작가가 출간하기란 쉬운 일은 아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호러물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괴물은 그렇게 우리 곁에 남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단연 <프랑켄슈타인>을 이야기할 정도로 좋아하는 소설이다. 아마 최소 3번은 읽은 것 같다. 이 소설의 매력은 소설을 읽는 나의 상황들이 바뀌면서 얻게 되는 교훈이나 집중하게 되는 포인트들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처음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의 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취업에 대한 목표가 있었고 이를 위해 조그마한 연관성이 있는 일이라면 뭐든 뜨겁게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주변은 보이지 않았고 세상엔 일과 나만 존재했다. 친구, 연인, 가족 모두 뒷전이었다. 다른 것들은 내가 목표를 이룬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며, 수험생 시절 대학만 가면 모든 세상이 달라질 것이란 부모님의 거짓말처럼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p.67)
 내 뺨은 연구로 창백해졌고, 집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몸도 쇠약해졌다...하지만 그때는 저항할 길 없는 광기에 가까운 충동에 내몰려 오로지 전진했다. 영혼도 감각도 모두 잃어버려 오로지 이 한 가지 연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p.68)
 아버지의 심기가 편치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차마 연구에 대한 생각들을 뇌리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그래서 사랑하는 이들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이제 본성을 철저히 삼켜버린 이 위대한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미루고 싶었다.

(p.72)
 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우연들도 사람의 감정만큼 변덕스럽지는 않다. 나는 생명 없는 육신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열망으로 거의 2년 가까운 세월을 온전히 바쳤다. 이 목적을 위해 휴식도 건강도 다 포기했다.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열정으로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하지만 다 끝나고 난 지금, 아름다웠던 꿈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했다고 엄마가 했던 말처럼 살이 쏙 빠지지 않았듯, 성취 후 결과는 우리의 생각보다 달지 않을 수 있다. 영화 <위플래시>를 보고 광적 노력에 대한 멋짐을 느끼는 관객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다고 한다. 노력의 중요성을 폄하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노력은 삶에서 평생 가져가야 하는 가치 중 하나라 생각한다.


 다만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맹목적 노력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모든 걸 뒤로 한 채로 달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목표는 그것을 달성했을 때, 엄청난 성과가 돌아오길 바라는 보상심리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나름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시 노고 끝에 완성된 자신의 창조물이 아름다울 것이란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는 달랐고 그가 창조물에 가졌던 샘솟는 애정은 사라지고 괴물에 대한 혐오만이 남았다.



(p. 73)
 그 눈은, 그걸 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꿈쩍도 않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한 손이 뻗쳐 나왔는데, 아무래도 나를 붙잡으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뿌리치고 층계를 황급히 달려 내려갔다.

(p.135)
 그리고 처음으로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의무를 생각하고, 사악하다 불평하기 전에 먼저 행복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우리는 오두막에 들어갔다. 악마는 걷잡을 수 없는 기쁨에 들떠서, 그리고 나는 묵직한 심장과 침울한 심정을 안고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창조는 방법이 다를 뿐 부모가 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장밋빛 미래만을 꿈꿨다. 그랬기에 자신의 상상과 다른 창조물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그로부터 탈출한다.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괴물은 냉혹한 세상을 직접 부딪혀가며 현실을 배워간다. 그리고 책임감 없이 자신을 창조해낸 빅터에게 죄를 물으려 찾아오자, 그를 잊기 바빴던 빅터는 그제야 자신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결혼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아직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두려움이 앞선다. 사랑하는 이를 닮은 자식이 생긴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모든 일이 긍정적인 측면만을 갖진 않기에 새로운 생명의 세계관을 나와 미래의 남편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은 벌써부터 겁을 먹게 한다.


 이렇게 고민이 필요한 일을 일단 저지르고 봤으니 빅터는 무책임했고, 괴물은 그에게 분노를 갖기 충분했다.



(p. 131)
 사람들은 모두 흉물을 저주하지. 그러니 살아 있는 그 어떤 생물보다 비참한 나를 얼마나 증오하겠는가! 하지만 당신, 내 창조자인 당신이 나를 혐오하고 내치다니. 나는 네 피조물이고,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지 않는 한 끊을 수 없는 유대로 얽혀 있다.

(p.194)
 나는 불행하기에 사악하다. 모든 인류가 나를 피하고 증오하지 않는가? 내 창조주인 당신도 나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승리의 기쁨에 젖으려 한다. 그걸 기억하라. 그리고 인간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인간을 동정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괴물의 고통은 아버지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버림받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저 등장했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도움을 주고도 사람들에게 혐오를 당한다.


 현대의 우리는 기술이 발달으로 흥미를 갖는 정보가 알아서 큐레이션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정보를 주로 습득한다. 그러면서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편리하기만 할 것 같은 이 큐레이션 덕분에 사람들은 최근 20년 중 가장 성향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세대가 되었다. 언제든 접속 가능하고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온라인 세상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혐오하며 분노하고, 역으로 나 자신도 혐오당하며 아파한다.


 괴물 역시도 평범한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된다. 선의를 가진일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선한 마음이 부정당하니, 그 역시도 분노를 품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괴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적어도 한 번은 제대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아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그렇게 더 많은 사람이 존중받았음 좋겠다. 그리고 그 배려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배려를 베풀며, 점점 더 따뜻해지는 세상이 살만한 사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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