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프랑켄슈타인>의 두 넘버_‘난 괴물’, ‘상처’
드라큘라만큼이나 익숙한 괴물, 프랑켄슈타인. 그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어진다.
교만한 나의 창조주여
처음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콘텐츠를 접할 때는 모든 관심이 괴물을 창조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향했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괴물이 아닌 괴물을 창조한 창조자의 이름이다. 괴물은 이름조차 없다.) 자신의 지식을 맹신하는 프랑켄슈타인.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에게 생명 창조란 지식의 최정점에 달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면, 뮤지컬 속 프랑켄슈타인은 소설 속 이유에 어릴 적 결핍이 더해져 연구에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관객들에게 생명의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인생을 보여주면서, 맹목적인 목표 달성이 놓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삼연에서 느낀 점은 달랐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연구에 몰두하면서 살피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주변만이 아니었다. 그는 창조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 뒤에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괴물에게 그는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다. 그토록 간절했던 연구가 성공으로 끝나고 괴물이 철제침대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소설 속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역겨운 존재라 여기고 도망치며 현실을 부정하기 바빴고, 뮤지컬 속 빅터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괴물을 보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마치 스위치를 끄는 듯이 그를 죽이려 든다.
그렇게 괴물은 세상에 한 줄기 빛과 희망도 없이 태어났다. 아니, 창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인간에게 먼저 마음을 연다. 자신의 생김새만 보고 돌을 던지고 죽이려 드는 인간들에게 말이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그의 선한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없다. 헛간에 몰래 숨어 살며 언어를 배워 다가간 소설 속 괴물은 차디찬 냉대를 받고, 생명을 존중하려는 뮤지컬 속 괴물의 마음은 비웃음 거리이자 잘못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인간에게 마음을 다친 괴물은 창조주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악한 복수를 원한다.
차가운 땅에 홀로 누워 눈물이 뺨을 적시네
이것이 외로움 혼자만의 슬픔
넘버 ‘난 괴물’은 이렇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세상에 사랑이란 걸 받아온 적이 없는 괴물이 아픔만이 더해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울부짖는 넘버이다. 넘버의 후반부에 까뜨린느와의 잠시나마 따뜻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그 품속에 살 수 없나 아파하는 그를 보고 있자면, 빅터가 그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면 괴물은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괴물 역의 한지상 배우는 초연부터 재연, 이번 삼연까지 앙리&괴물로 출연하며, 빅터 빅랑켄슈타인을 만나 같은 꿈을 꾸고 꿈을 위해 강단 있는 결정을 내리는 앙리와 악하게 복수를 원하는 괴물을 연기한다.
한 인간이 있었네
그저 나약했던 남자
저 하늘을 동경해
스스로 신이 되려 했지
자신을 닮은 생명을 만들었어
하지만 깨달았지 준비가 안된거야
어떻게 성장할까 어떻게 행복할까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죽을건가
신이 되고 싶었지만
무책임한 욕심일 뿐
인간은 왜 이 세상이
자기꺼라 믿는걸까
넘버 ‘상처’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에게 해줬어야 했던 일을 가장 잘 표현 넘버이다. ‘괴물을 만든다’, ‘괴물을 처리한다’ 두 생각에만 빠져 있는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다르게 괴물은 빅터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가 빅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온 재회의 자리에서 그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보여진다.
'상처'를 부른 최우혁 배우는 뮤지컬<프랑켄슈타인>의 재연에서 신인으로 앙리&괴물 역으로 캐스팅되어 큰 관심을 받았었다.
이전에 책을 읽고 작품이 막이 내렸을 때엔 ‘겸손’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은 언젠가는 나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면서 영향을 주게 될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나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 아이가 필요한 걸 잘 알아채고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인가'하는 생각들이 공연의 감동과 함께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