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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Jun 30. 2023

외할머니의 어두육미

여행지에서 느낀 외할머니의 사랑

외할머 이야기 - 1

(2020년 6월 23일 작성글 재발행글)


"안돼! 이거 내 거야! 할머니 내 국수에 손대지 마!"

얼핏 엿들으면 다 큰 성인이 외할머니에게 대뜸 큰소리 지르는 것이 꼭 버르장머리 없는 손녀딸 같지만 실은 애교와 투정 섞인 걱정이었다.


그랬다. 1박 2일 동안 큰 이모네와 친정엄마와 함께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들린 휴게소에서 나와 이모는 돈가스와 막국수 세트 메뉴를 하나 시켜 나눠먹었고 외할머니는 등심 돈가스를 드셨는데, 우리 것은 세트 메뉴라 돈가스 크기가 조그마했고 할머니 것은 꽤 큼지막했다.


할머니는 요즘 다이어트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않는 내가 고기인 돈가스는 크기도 하필 적은데 그걸 이모와 나눠 먹느라 몇 조각 먹지도 않고 막국수로 배 채운다 생각하셨나 보다.

우리 메뉴에 달려 나온 국물에 할머니 메뉴에 있는 밥을 말아 드시곤 이내 곁들이는 샐러드를 마저 드시더니 "아유~ 배부르다"시며 당신 접시에 있는 돈가스를 우리 접시로 다 옮겨주시고는 막국수를 집어 가시려는 것이었다.


이모가 옆에서 '할머니 이제 이렇게 드실 거야', '아마 이렇게 말하실걸?'이라고 귀띔해 주지 않았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할머니 마음도 모른 채 넘어갈 뻔했다. 나도 지금 엄마지만 어찌 다 같은 엄마 마음일 수 있을까.


열일곱 나이에 연애 경험 한번 없이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시집와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살아왔지만 어디 한평생 살다 보면 내 남편 내 가정이 어디 꿈꾸는 대로 시계태엽 감기듯 감겨 돌아가느냐 말이지. 그 시절 산 세월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야 없겠지만, 그저 슬하에 육 남매를 희망의 빛줄기 삼아 지푸라기처럼 붙잡고 살아오셨을 테지.

여행내내 할머니는 잘나온 사진으로 영정 사진을 쓸거라며 독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다.

괴로울 때면 비 오는 날 밭 한가운데 퍼질러 앉아 남몰래 하염없이 울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나니 그제야 술만 마시면 딴 사람이 되어 죽이겠다고 낫 들고 덤벼 나무 위로 숨게 만들던 영감도 가고 없고 창창했던 내 젊음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그저 거친 주름살과 뒤덮은 검버섯만이 녹록지 않았던 할머니의 한평생을 기억하고 있을  뿐. 그러니 어떻게 저 시대 엄마들의 희생정신을 지금의 엄마들이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물론 가치관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예전에 들었는데 할머니는 싱싱한 생선보다 꼬릿꼬릿한 생선이 더 맛있다고 했다. 사람 입맛 거기서 거기일 텐데 싱싱한 생선을 맛없다고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게 바로 어두육미였구나 싶다.

(어두육미는 효심 지극한 아들이 어미에게 생선살을 먹이려고 자신이 맛있는 머릿살을 먹을 테니 어미는 맛없는 몸통 살을 먹으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는 친할머니 손에서 자랐기에 외할머니랑은 그다지 공감대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외할머니가 크게 아픈 곳 없이 살아계셔서 좋다.

앞으로 적어도 세 번은 할머니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드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엄마라는 둥지가 얼마나 든든한 것임을 알기에 오래오래 외가 식구들의 기둥 자리인 그 자리를 건실하게 지켜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할머니와의 추억을 앞으로 많이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죽어서까지 얼마나 이쁘려고 영정사진을 이런데서 찍어? 이런곳에서는 나랑 찍는거야!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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