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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Jul 09. 2020

브런치를 대하는 자세

초심, 그 마음 잃지 않기를

브런치 작가가 된지도 오늘이면 보름이다. 극단적인 나의 기질은 브런치 작가가  기쁨고스란히 브런치에 대한 과도한 열정으로 탈바꿈시켰다. 나도 내가 이렇게 빠져들 줄 몰랐다.


핸드폰은 건강한 디지털 생활을 위해 내 핸드폰 사용량에 대한 경고음을 울렸고,


길에선 다른 작가님이 쓴 글을 읽느라 걸으면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해 꽈당녀가 되기도 했다.


가족이라고 내 브런치 구독자가 되어주진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브런치와 내 글에 관심이 없었고, 두 번째 이유는 귀찮아서였다. 지인들은 굳이 구독하기를 누르지 않아도 브런치에서 내 글을 읽을 수 있었기에 구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나 역시 구독을 요구하진 않았다. 아니 그전에 나에게 관심 넘치는 몇 안되는 지인이나 오가는 내 카스에 게재해 놓았을 뿐 브런치 작가가 되었음을 애초에 알리지도 않았기에 내 글을 읽으러 올 지인도 딱히 없었.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구독자 중 가족을 포함 내 지인의 수는 모두 4명)


누군가 내 글을 구독한다는 알림이 떴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준다는 것은 새로운 기분이었다. 홀로 짝사랑해오던 사람에게 고민 끝에 고백하려던 찰나, 사실은 나도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고백받은 기분쯤이랄까.

그렇기에 부족한 내 글을 구독해주시는 한 분 한 분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 -'♡(꾸벅)


이쯤에서 한 가지 사설을 늘어놓자면, 오래전 한 지역 카페 모임에 자주 참석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카페 규모가 꽤 크지만 그때는 초창기 때라 모임 성격이 순수했다. 그 당시 나는 생계를 위한 영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 측의 요청이 없는 한 그곳에서는 영업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영업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동일 업종에 종사하던 친구가 모임에 따라나서더니 명함과 팸플릿을 뿌리는 것이었다. 그 모임에는 이미 여러 직종의 영업인들이 참석해오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영업적인 모습을 띄려 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규모가 커지니 모임의 성격은 점차 퇴색되고 말았다. 이 곳 브런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구독과 라이킷이 브런치 생활을 함에 있어 활력이 되고 그 선택은 개인의 자유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끔은 구독과 라이킷, 공유와 댓글 수에 연연하는 작가님을 볼 수 있었다. 글 끝에 구독과 라이킷을 요구하는 멘트나 구독 후 상호 구독이 없으면 기다렸다는 듯 구독을 취소하는 경우 는데(그러지 ..☞☜..저 소심해요!) 여기는 유튜브가 아닌 '브런치'다. 구독과 좋아요를 향한 외침은 유튜브에서나  일이다.


어떤 것이 가벼운 취미일 때와 일이 될 때는 차이가 생긴다. 글쓰기가 취미일 때는 그저 즐길 요량으로 임하면 된다. 즐기면서 임하면 본연의 내 색깔이 글 속에 그대로 나온다. 그러나 브런치에 빠저 들면서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것이 하루 중 내가 해야  하나의 일과로써 자리매김하자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글은 똑바로 쓰고 있는 것인가?', '내 글에 재미 요소는 있나?'.. 등 나의 희로애락을 담은 경험담과 내 일상 이야기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겠다는 초심은 온데간데없이 어중이떠중이 방향성 잃은 글들만 마구 나오기 시작했다. 재정비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일의 완성도는 외로움과 깊은 사색 그리고 끈기와 끝없는 열정을 요구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카스에 대충 끄적이 것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우선 글의 분량이나 구성면에서 현저하게 다르, 브런치 글은 완성도 있게 끝맺고 싶다는 내 희망사항까지 담는다는 것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글을 발행한 후에도 읽고 또 읽으며 다듬고 또 다듬 보지만 그래도 부족함이 군데군데 서리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타지 않고 빛나는 LED꽃 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FIRE~ 퐈이어~~!! 타거나 혹은 남을 비추거나.
세상의 불꽃은 환하게 비추어 빛으로써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과하면 뜨거움에 화상을 입힌다. 하지만 정신의 불꽃은 뜨거움 없이 영롱히 밝기만 밝아서 그 빛으로 하여금 비추지 못할 것이 없기에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쓰는 글에 마음을 담아야 하는 이유 될 테다. 


fire 뜨거운 열정에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느냐 FIRE 밝은 빛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보혜 [넓을  은혜 혜] 되느냐는  마음가짐에 달렸다. 가다가 들면 쉬어갈 거다. 이 글은 가까이 두고 보며 이따금씩 써내는 글일지라도 너절너절해지는 일이 없도록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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