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1 때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는데 공부도 잘하고 잘생겨서 늘 인기 좋은 친구였다.공부를 잘해 진주 시내 고등학교로 진학해놓고는얘도 나처럼고등학교 때는 공부에서 손을 놓았더랬다. 그 때문에대학은 성적 맞춰 지방 4년제 국립대로 가다 보니 또 같은 대학교에 가게 됐다.그땐 우린 헤어졌고 그 친구에게는 이미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 그 넓은캠퍼스에서도 어쩜 그리 눈에 잘 띄는 건지. 그냥 스쳐 지나가면 될 것을 저도 날 발견하면 꼭 잡고 있던 여자 친구 손을 뿌리쳤다되잡는 모습이 너무 꼴 보기싫었다.
이 친구를 만날 때 나는부끄러움이 참 많았었다. 그래서 단둘이 만난 적도 거의 없을뿐더러, 두 손가락에 꼽는 둘만의 만남에도 나는 되지도 않는 신문을 옆에 끼고 약속 장소에 나가 펼쳐 들고 설쳐댔으니 -_-;;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다고 해야 할지 바보 같다고 해야 할지.뭐 그러다가 보기 좋게 차였다.
내가 처음 ROTC 오빠의 고백을 거절한 이유도 이 친구 때문이었다. 기억할 것도 추억할 것도 없지만, 너무 순진할 때라 그놈에게 차인 사실이 당시 내겐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학부 선배들이 '늘 술동아리 명예 멤버술천포'라고 놀릴 만큼 술 마시고 놀기를 좋아하던 나에게 진주-대구 간의 거리는 "오빠, 보고 싶어" 한다고오빠가 한달음에 달려와 줄 수 있는 거리도, 내가 달려갈 수 있는 거리도아니었기에 사귀자고 고백한 것에 'Yes'라고 답한 뒤에도 내 마음에 호감을가지고 마음을 키워나갈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내 생각을 다 알고 있던 오빠는 이미개강 때 시간표를 나에게 맞춰 짜 놓았더랬다. 그리고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내 앞에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 나를 놀라게하기도 했다.
하루는 오빠가 멋져 보이고 싶었는지 내 아지트인 2층 오락실 계단 아래ROTC 단복을 입고 나타나베레모를 이리저리 써보며 씩 웃어도 보았다가 멋있는 척을 해보았다가 혼자서 생쇼를 하고 있더랬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니, 얘가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왜 이렇게 안 나와?'라는 표정으로 계단 위를 살피다 그제야나를 발견한 오빠는 흠칫 놀라며 손으로 매만지던 모자를 계단에 떨어뜨렸다. 웬걸? 그 장면은 아직도슬로모션처럼너무도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다.떨어진 모자를 주우며 일어서던 모습과민망한 듯 미소 짓는 그모습.내가처음으로가슴이두근콩닥폴짝거리며 심쿵한 순간이었다.
부산에서 학교 다니던 친한친구가 날 보러 진주에 왔다. 오빠 소개도 시켜줄 겸셋이 술을 마셨다."오빠는 보혜랑 사귄 지 50일이 넘어가는데 여태 뽀뽀도 못하고뭐했어요?"라는 친구의 말에 오빠는제법 머쓱해했다. 친구는오빠더러 나랑뽀뽀해보라고 옆에서 자꾸 부추겼는데 그럴수록 오빠는 더 부끄러운지 "자자! 건배!"를 외치며 연거푸 술잔만 비워댔다. 오빠는 나랑의 연애가 처음이 아닌 걸로아는데 왜그랬는지 모르겠다. 오빠가 옆에서 자꾸 부끄러워하니 내 심술보가 도지면서 오기가 발동했다.
- "오빠! 나 뽀뽀해줘!"
"응?"
-"뽀뽀해 달라고!"
그렇게 친구 앞에서 입술만 잠시 마주하는 가볍고 어설픈첫 뽀뽀가 내 입술 위를 스쳐 지나갔다. 친구는 임무를 완수한 듯 내 등을 손바닥으로 마구쳐대며 꺄르륵크큭 좋아했지만, 나는 뭔가 찝찝한 기분에 오빠를 데리고화장실로들어갔다.
-"오빠 뽀뽀 처음 하는 거야?"
"아니?왜?"
-"아닌데?이 느낌이 아니었는데?"
(고딩때 내가 좋다며 도둑 키스를 한 놈이 있었다.)
"응?"
-"키스해!키스하자 우리!"
뽀뽀도 어설펐는데 키스라고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오빠는 마치 '키스하는 법'을 글로써 익힌듯했다.그 날 이후에도 오빠는키스까지! 잘하는 법을 글로 익혀오는 듯했다. 풉ㅋ그도 그럴 것이, 키스하다가 "친구 놈들이 남자는 키스할 때 여자 가슴을 만진데 근데 오빠는 내 가슴 왜 안 만져?"라는말에 수줍게 내 왼쪽 가슴 위로 손만 살포시 올려놓던 오빠였다. 나는 무슨 오빠 손을 내 왼쪽 가슴 위에 얹어두고 국기에 대한 맹세하는 줄 ^^ ㅋㅋㅋ
매사에 조심스럽던 오빠는 그런모든 마음을 수첩 하나에 기록해오고 있었다. 나에게 '사랑해 사랑해' 말하고 싶은 마음, 너무 떨려서 자꾸만 서툴어지는스킨십에 대한 마음, 매일 만나지 못해 속상한 마음과 때때로 늘어놓는 내 투정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거기에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는 오빠 친구들의 메시지와 학군단 이야기도 있었다.
훈련 가서 너무 힘들었는데 나한테 편지가 한 통도 안 와서 서운했다는얘기와별자리인지 북극성인지 찾을 때 내 생각하며 아주 잘 해냈다는 얘기도.
돌이켜보면 오빠는 나에게 참 헌신적인 남자였다.
그땐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모르는 나라서 오빠가 많이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시시콜콜한 기억조각을다꺼내들 순 없지만, 분명한 건 모든 것에 완벽하지 않았기에 아쉬움이 남고 아쉬움이 남았기에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따금씩 불현듯 그 사람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미련도 그리움도 아닌그저 이별 앓이 후에 생기는 후유증처럼번지는아련한 미소로그 날의 설렘들을 기억하며..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내 첫사랑을..
@ 처음이라서_정효빈
떨어질 줄 몰랐던 너의 품도 잡은 손에 스치던 봄바람도 떨리던 입맞춤도 맞춰 걷던 걸음도 내겐 모두 처음이라서 고된 하루 끝을 토닥여 준 것도 작은 편지로 큰 눈물을 준 것도 벚꽃과 여름바다 단풍과 함박눈이 처음이라서 힘든가 봐
.....
사실은 겁이 나 이젠 어딜 가도 너와의 추억만 있을까 봐 그래도 처음이라 힘든 거니까 더 아픈 거니까 처음엔 다 그런 거니까 고생했어 많이 행복했었어 너라서 다 너라서 유난히 좋았나 봐 시간이 지나면 먼 추억이 되어 언젠간 웃겠지 참 좋았어 네가 내 처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