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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Jul 13. 2020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바르게 인사하던 그 마음으로 살아요

날씨가 더워지면서 앞 베란다 창을 다 열고 있다. 등·하원 시간이 되면 들어서는 차량 행렬 사이로 아이들의 밝은 인사 소리가 어김없이 낭랑하게 들려온다.

(그림 by 그라폴리오_드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히 잘 가! 내일 또 보자!"


마중 나온 엄마 품에 달려가 쏙 감기듯 부둥켜안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조잘거릴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군자국 답게 예절의 기본인 인사성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

군자국[君子國]
옛날 중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고 싸우지 않는 등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이 바르다 하여 이렇게 일컬었다.
                                               -출처: 두산백과-


"나 때는 말이야" 다음으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푸념 섞인 어른들의 "우리 때까지만 해도"인 것 같다. 이 말은 나도 들어왔고 나도 쓰는 말 중에 하나다. 그러고 보면 이제 나도 나이가 드는가 보다.


어릴 땐 저렇게 해맑게 인사도 잘하는 아이들인데 점점 아이들이 자랄수록 언제, 무엇이 문제이길래 갈수록 세태가 이기적이고 각박하게 변하는 걸까?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는 친구는 그나마 나은 편인 것 같다. 중고등학교 교사로 지내는 친구는 교사 생활 초반에 앓다 못해 죽는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그림 by 그라폴리오_이응)

나 역시도 방문 교사로 일하는 동안 유아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의 순수함도 보았지만, 아이들의 그릇된 방향성을 보기도 했다. 대개는 환경적 요인이나 부모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가가호호 방문하여 수업하는 방식이다 보니 가끔은 성향이 별난 부모를 만나기도 했는데, 내 아이가 듣기 싫은 소리는 듣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어 학원은 못 보내겠으니 선생님이 아이 공부를 책임져달란 부모, 아이가 맘 놓고 밥 먹고 볼 일 볼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들어오란 부모, 아이 학습 상태에 맞춰 내가 짜 놓은 진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요구하는 학습을 해달라는 부모, 방문일에 맞춰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사전 연락 없이 아이와 외출한 후 다른 날 재방문을 요구하는 부모,.. 등


나는 개인 과외를 하는 것도, 그 아이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다. 한 집 스케줄이 꼬이면 그 날 하루 스케줄이 줄줄이 다 꼬였다. 밥을 못 먹는 건 당연한 일이고 화장실 가는 것도 일이라 방광염에 안 걸린 게 신기할 따름이다.


또 어느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내 아이 자세가 바르지 않아 "00야, 공부할 땐 자세 바르게 하고 앉는 거야!"라고 했다가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머리 숙여 사과할 것과 한 달 회비 환불을 요구받아 지국이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평상시 그 선생님은 남에게 싫은 소리 하나 못하기로 착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이었으며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성품이었기에 자기 아이에게 상처 줬다는 부모의 주장이 마냥 억지스럽게 들렸다. 나중엔 결국 아이의 아빠가 드센 엄마의 성격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생님께 억지 부렸다며 환불받은 돈을 되돌려주며 선생님께 사과함으로써 일이 일단락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있었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등 어떤 기념일이 되면 사탕과 초콜릿 그리고 연필 등으로 작은 선물 꾸러미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눠준다. 받은 선물에 마냥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면 그에 앞서 부모가 먼저 꾸러미를 받아 검열하며 차단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꾸러미에 들어있는 모든 사탕이 유기농이 아니란 이유에서였다.

(그림 by 그라폴리오_히용)

"야! 너네 엄마 아빠 잘났다! 여기 유기농 사탕도 들어있거든? 내가 이거 해서 돈 몇 푼이나 번다고 너 하나 입맛에 어떻게 다 맞추냐? 이거 먹지 마!"

나도 그때는 인간인지라 이렇게 속으로 외치고 겉으로는 애써 "네 ^-^ 어머니 ^-^ 하하하 호호"

속 빈 강정 위에 매직으로 짙게 그려놓은 이모티콘처럼 한참을 웃으며 얘기하다 나왔다.


인생을 별스럽게 사는 게 내 전문이라서 그런가? 학습지 교사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다른 선생님이 오래도록 일하며 겪을법할 별 케이스를 단기간에 다 겪기로 유명하긴 했다.


조금 있으면 이 동네 아이들의 하원 시간이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리는 오늘이라 아이들의 하원길이 혹시 불편하지는 않을까 걱정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아이들의 밝은 하원 인사는 오늘도 여전히 낭랑하게 울려 퍼질 거다.


나이가 몇 살이 되었건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낭랑하게 인사하던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한 번쯤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각박한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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