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는 가짜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진짜’란 한자 ‘眞字’를, ‘가짜’란 한자인 ‘假字’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假는 人에 叚의 음을 합한 글자이다. 원래 ‘叚’는 ‘빌다, 빌리다’. 爲는 ‘하다’로 정당했던 행위였는데, 人이 개입되고 나니 假짜가 되고, 僞가 되어 결국 ‘허위’가 되었다. 허위가 사람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자로 보면 사람이 있는 한 가짜는 없어질 수 없는 것 같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을 다 말할 수 없으므로 요즈음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가짜뉴스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가짜뉴스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사실무근, 근거 없이 꾸며진 날조, 의도적으로 꾸며진 계략 僞計위계, 상대방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무함 무고, 중상모략, 흉계 등인데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는 것을 말한다.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갖춘 사람들마저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면 가짜뉴스의 교묘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자타가 인정하는 언론매체에서 그 짓을 하니 곧이듣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가짜뉴스보다 더 교묘한 보이스피싱은 개인의 돈만 털어가지만 가짜뉴스는 진실을 가려 사회를 오도하고, 혼란에 빠트리고, 사회를 불신하게 만듦으로 해서 국민, 국론을 분열시킨다. 가짜 뉴스는 그것을 노려 정권을 차지하려는 정객들이나 기득권을 가진 계층, 경쟁에서 밀려난 불만계층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 죄로 말하면 보이스피싱과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엉뚱하게도 '표현의 자유'라는 황당한 면죄부를 가지고 있다. 일부 불순한 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와 사회를 어지럽게 하고, 분열을 방치하는 것은 민주주의도, 인권존중도 아닐 것이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우리 사회는 아직 선진국도, 민주주의도, 성숙된 시민의식에도 이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가짜와 진실을 구분할 수준이 못 된다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통제해 주어야 한다. 어찌 'N번 방'은 용서가 안 되고,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인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속담도 있지만 장 단지에 구더기가 생기면 잡아낸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만약에 구더기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애초에 장을 담그지 말아야 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거기에 기생하는 구더기를 잡아내야 유지될 수 있다. 선거철이 되니 가짜뉴스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뉴스는 가뜩이나 불통의 시대에 불통을 부채질하는 중죄여서 어떤 가짜보다 그 폐해가 크므로 엄정한 단속을 해야 한다.
가짜뉴스 못지않게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이 가짜 종교임을 우리는 몸서리쳐지도록 실감하고 있다. 가짜종교는 邪敎(사교)라 해서 대처가 되지만 사이비 종교는 사이비 가짜라서 대처가 쉽지 않다. 종교 스스로가 사교, 이단, 사이비 신앙이라 해서 말이 많지만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휴거를 재촉한다면 가짜 종교가 틀림없다. 교주가 메시아임을 자칭한다면 가짜가 틀림없다. 현실적인 노력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가짜 종교가 되기 쉽다. 그것은 노력 없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행위에 가깝다. 교리가 맹신적이고,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이라면 가짜 종교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종교가 정치에 야합하거나 극우집단을 선도하는 것은 스스로 종교임을 를 포기한 것이다.
가짜 인간으로 말하면 정치인들보다 더한 가짜는 없을 것이다. 원래 政治란 正治, 바른 다스림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를 이렇게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제일 믿을 수 없는 인간이 정치인이라는 데에 많은 국민이 동의한다. ‘정치적’이란 곧 변칙, 반칙으로 통하는 실정이니 정치란 정도가 아닌 것이 확실하고, 정치인이란 변칙과 반칙을 일삼는 가짜들이다. 그러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지망생들이 줄을 잇는데 신기하게도 국민들은 그 혐오스러운 정치인들을 뽑는 데 열을 올린다. 물론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선거 때마다 속을 끓이지만 대부분은 또 그들에게 나라의 장래를 맡기고 기대하니 우리 국민들은 머리는 좋은데 기억력은 없는 것 같다. 선거제도가 시작되고서부터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다람쥐 쳇바퀴 선거를 여전히 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선거를 없앨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의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무지하다. 선거 한두 번 하는 게 아니건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러니 지방의회 의원들마저 망둥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비례 정당이라는 희한한 놀음으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데 이들은 기생충에 또 기생해서 사는 바이러스들이다. 기생충은 그래도 세포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그것마저도 없다. 국민은 그것들한테도 다람쥐 노릇을 해야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유권자들은 기생충을 뽑고, 또 거기에 붙어있는 바이러스들도 먹여살려야 한다. 명분이야 '정당지지도 반영'이라고 하지만 정당이란 가짜 인간들의 집단이니 그래봐야 도로 다람쥐를 면치 못한다. 투표를 하자니 가짜를 만드는 일이고, 안 하자니 그나마 더 큰 기생충과 바이러스들이 생길 것이고- 우리한테 선거란 최선의 일꾼을 뽑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작은 기생충을 뽑을 수 있을 뿐이다.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감당 못할 권력에, 턱도 없는 세비에, 말도 안 되는 특혜까지 주어서는 이 철면피 기름챙이 가짜들을 소탕할 수 없다. 권한은 주되 세비와 특혜를 없애야 가짜 인간들을 퇴치할 수 있다. 오죽하면 어느 정당의 선거공약에서까지 '국회의원을 완전 봉사직으로 한다'라는 공약을 내 걸었을까? 허망한 정당도 아는 사실을 멀쩡한 정부와 국민들은 왜 모르는가? 재벌개혁, 사법개혁에다가 입법개혁도 하루빨리 착수해야 하지만 이들의 힘이 워낙 막강하니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으로는 기대난망이다.
사람 있는 곳에 가짜가 없을 수 없으니 가짜타령을 어찌 남에게만 돌릴까? 정도의 차이일 뿐 가짜 아닌 사람이 없다. 나의 사회적 지위에, 사회활동에, 대인관계에, 내 명분에 가짜가 없을 수 없다. 가끔은 선의의 가짜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는 허위적, 위선적, 과시적, 은폐적 가짜일 것이다. 사람인 이상 피할 수 없는 가짜라 하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일이라면 천진, 정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언제부터인가 가짜 명품을 짝퉁이라고 했는데 그 내력은 이렇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가짜라는 말을 기피하고 싶은 심리에서 가짜를 슬쩍 ‘짜가’라고 뒤집었다. 그래서 한 때 가짜 세상을 풍자하여 ‘짜가가 판친다’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짜 명품에는 베네똥, 루이비똥이 판을 쳤다. 그래서 짜가베네똥, 짜가루이비똥이 되었는데 이를 줄이다 보니 ‘짜가’가 ‘짝’이 되었고, 다시 베네똥, 루이비똥의 끝 자를 남겨 ‘똥’이라 하고, 똥이 어감이 유쾌하지 못하여 다시 ‘퉁’으로 살짝 틀어 연결해 보니 기분 나쁜 똥은 없어지고, 유명한 ‘짝퉁’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