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政세정은 예로부터 국가경영의 기반이요, 핵심이었다. 지금도 국세청은 정부의 실질적 3대 권력기관이다. 세정이 올바르면 국가는 건강해지고, 어지러우면 국가는 스스로 무너진다. 나라를 밖으로 지키는 것은 국방, 외교이지만 안으로 지키는 것은 교육과 세정이다. 세금이 공정하게 매겨지고 거두어지고 있는가, 정당하게 집행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 민주시민의 권리요, 책임이다. 납세의 의무를 다했으니 세정이야 정부에서 잘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면 민주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 주변에는 이른바 ‘눈먼 돈’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눈먼 돈이란, 박봉을 쥐어짜낸 혈세가 누수 되는 수도관처럼 아무 의미 없이 낭비되는 돈이다.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국가예산의 절반만 제대로 쓰여도 성공이라고 한다. 국회에서 정부 예산안을 미루다가 시간에 쫓겨 눈깜땡깜 처리하는 것을 보면 국민의 혈세가 정상적으로 쓰여질 리가 없다는 확신을 하게 한다. 우리 국방예산은 북한의 30배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미군이 없으면 북한을 감당할 수 없어 쩔쩔 매고, 전시작전권마저 없으니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 많은 국방예산은 어디로 가는가? 가끔 터지는 방사청 비리로 미루어 볼 때 우리 국방비는 눈먼 돈일 가능성이 짙다. 방사청 비리야 국방예산 부정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정권 교체기마다 벌이는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국방전력 강화사업은 그들의 통치, 노후자금이기 마련이다. 국방예산만 제대로 집행되었더라면 전시작전권은 벌써 우리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국방예산보다 턱없이 적은 예산으로 우리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는 북한의 군사력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핵무기나 첨단무기의 구입보다 국방예산의 엄정한 집행이 안보의 첫걸음이다.
세금이 올바르게 쓰여진다면 세금내기를 억울해 하는 사람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알고 보면 눈먼 돈은 공짜 돈이 아니라 모두 우리가 낸 혈세이므로 남의 일이 아니다. 눈먼 돈을 하나라도 밝히려는 의지를 가지고 정당한 예산집행을 요구하는 것이 국력의 낭비를 막는 민주시민 정신이다. 매사에 ‘누가 낸 세금인데-’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성실한 봉급 납세자가 있는가 하면, 탈세를 능사로 하는 사업자가 있다. 그들은 세금을 곧이곧대로 내다가는 사업을 할 수 없다고 대놓고 말하니 애초부터 탈세를 작정한 것이다. 정작 돈 많은 사람은 탈세할 궁리나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힘없고 돈 없는 봉급자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세정의 현실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와는 상관없는 일이요, 민주주의는 더구나 아니다. 적어도 세금 앞에서는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납세에는 충실하면서도 세정에는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감사는커녕 오히려 우습게 본다. 위정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국민의 순진, 우매, 맹종이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당한 민주시민의식이다.
<周易>에 上損下益상손하익 下損上益하손상익이란 말이 있다. 위를 덜어서 아래에 더하고, 아래를 덜어서 위에 더한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지금 옛날의 점괘를 가지고 국민에게 무엇이 옳은가를 가지고 새삼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현실이 슬프다. 남는 것을 덜어서 모자라는 것에 보태고, 있는 자의 것을 덜어서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한 사람의 도리이다. 그러려면 부자증세, 기업의 법인세 인상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민주시민사회의 원리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치를 어기고 부자감세, 법인세 감면을 시행한 것이 과거 정부였다. 그들은 늘 국제 경쟁력 강화, 경제 활성화 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결국 강한 자를 더욱 강하게 해야 약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일면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이요, 결국 빈익빈부익부의 타락한 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서는 양심, 도덕, 윤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자감세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여유 있게 당선된 적이 있었다. 부자들이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있을 법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시에 유권자들이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거나, 아니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였을 것이다. 부자들의 세금을 덜해 준다면 당연히 가난한 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어리석은 국민이 틀림없다. 기업이 내야 하는 법인세를 감면해야 한다는 재벌우대 정책을 버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뻔뻔스럽게 내세웠던 것이 과거 우리의 정부였다. 이런 부조리가 벌어지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얕보거나 국민이 실제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가진 자가 더 욕심이 많은 법’을 정당화해 주는 구조가 우리의 자본주의였다. 기업의 조세부담을 줄여주는 법인세 감면은 필연적으로 봉급자 증세를 동반한다. 숨길 방법이 없는 소득세를 비롯하여 건강보험료와 주민세는 봉급자가 만만한 봉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말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苛斂誅求가렴주구가 아닌가? 이러한 제도로 어떻게 사회정의,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하다.
법인세 감면, 부자 감세는 기업과 부자의 세금을 깎아 줄 테니 노동자, 봉급자들은 세금이나 더 내다가 재벌들이 배를 불린 다음에 나머지나 얻어먹으라는 말과 어떻게 다를까?
만약 기업이 경영에 실패하여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가 져야 한다. 그 대책이란 것이 일방적인 구조조정이고 감원, 해고이다. 그러면서도 같이 책임지는 기업주는 없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지금껏 뼈저리게 목격해 왔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금융특혜를 받아서 일어난 기업이 국민에 대한 보답은커녕 국민을 실직으로 내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행태에 번번이 공적자금이란 것을 풀어 무책임하고 실패한 기업을 구제한다. 국민의 혈세를 몰아 무능하고 부도덕한 기업을 살리면서 그것이 곧 근로자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변한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무능과 부정의 결과를 국민이 도맡아 감당해야 하고, 그중의 일부는 실업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우리의 정부가 해왔으니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재벌을 위한 정부였다.
지금 나라의 경제 외교가 어렵다 보니 벌써부터 야권에서는 무능론, 책임론, 정권 심판론, 심지어는 망국론마저도 일어나고 있다. 현 정부의 성공 여부는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세정적인 면에서는 그래도 개선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부자증세, 서민감세는 민주주의가 지켜내야 할 세정의 기본이다. 정의 세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이는 감수해야 할 과정이다. 새로 정권을 잡은 진보세력들이 미숙하여 발생하는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더구나 기득권층이나 기업하는 쪽에서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가 가혹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바른 세정의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면 약먹기 쓰다고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아닐까? 작금의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정책적인 미숙 때문에 과거 정권의 비리와 불공정을 잊어서는 현명한 국민이 아닐 것이다. 서민감세를 하고, 서민을 위한 복지예산이 늘어난 일을 서민이 마다해야 할까? 정부예산의 낭비와 부패를 줄이고, 횡령과 착복을 막고, 재벌들이 독식하던 예산을 서민에게 돌려주는 정책을 좌파정권이나 국가예산을 위험하게 하는 포퓰리즘으로 매도해야 할까?
세금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왕 피할 수 없는 세금이라면 내가 낸 세금이 정당하게 쓰이고 있는지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민주시민 의식이 필요하다. 적어도 내가 낸 피같은 세금이 나라를 망치는 기생충들을 건사하는 데 쓰인다면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국회의원에서 시의원까지, 검찰에서 고급공무원, 재벌, 언론 기레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철면피 전 대통령 골프까지 내 세금으로 경호한다면 누가 세금 내고 싶겠는가? 언제나 우리도 기꺼운 마음으로 납세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와야 세금은 물론 사회를 위한 기부금도 쾌척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