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생각은 서양 사람들의 언론관이다. 우리는 그것을 直筆직필이라고 했다. ‘펜’과 ‘필’의 발음이 비슷한 것은 우연인지 모르지만 ‘언론’이라는 의미는 동서고금이 같다. 언론은 사회를 깨우치는 목탁이기도 하지만 입과 붓을 잘못 놀려 화를 당하는 일이 잦은 것을 보면 언론은 양날의 칼이다. 계제에 우리 언론매체 기자들의 필력은 어떤지 생각해 볼 일이다. 筆力은 글 쓰는 재주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에서 나온다. 좋은 글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가치 있는 주제의식에 달려 있다. 요즈음 각종 언론매체들의 기사나 사설을 보면 문장력이나 논리에서 옛날에 비해서 손색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의 문장력, 수사력의 부족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권력, 권세에 야합하다 보니 가치관이 타락하고 주제의식이 빈곤해진 결과이다. 그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보다는 개인의 편의와 영달에 눈이 멀어 필력의 약화는 물론 진실마저 왜곡하는 일이 허다하다. 옛날의 직필에 비해서 붓 장난이나 하는 농필(弄筆), 진실을 호도하는 곡필(曲筆)을 일삼으니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언론사 역시 본분을 망각하고 권력과 야합하여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옛날에는 기자와 언론사가 권력에 맞서 투옥도 되고, 정간도 당하고, 백지신문도 내고, 힘에 부치면 굴복도 하였지만 지금은 스스로 알아서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에 바쁘다. 사회의 목탁, 정의의 수호자가 스스로 자청하여 권력과 재벌과 진영의 시녀가 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내 굴지의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들이 벌이는 사회적 추행은 그들도 타락한 재벌, 법관, 고위공무원, 추악한 정객들 못지않은 5적의 하나임을 입증하고 있다. 언론인은 원래 사회를 깨우치는 바른 글로써 筆禍필화, 옳은 말로써 舌禍설화를 입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성을 전화위복으로 삼는 것이 우리의 언론인들이다. 요즈음 필화를 입는 정직한 언론인은 적고, 부귀를 누리는 간교한 글쟁이, 말쟁이들은 많다. 사회의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목탁이 되어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야 할 언론인, 지식인들이 천박하고 교묘하고 달콤한 교언이설(巧言利說)로 국민을 속이고, 심지어는 가짜뉴스까지 옮겨서 여론과 민심, 천심을 조작하고 있다. 그 대가로 국민의 혈세를 축내고 부귀를 보장받는 여의도 쓰레기가 되는 일이 잦으니 5적의 화려한 변신이다.
아무 쓸모없는 물건을 쓰레기라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쓰레기는 쓸모를 따지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의 생존을 위험하게 하는 흉물이 되었다. 생활쓰레기부터 축산쓰레기, 산업쓰레기, 건축쓰레기로 땅을 위협하고, 생활의 이기인 줄만 알았던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를 오염시키고, 하늘에는 오존 구멍을 만들고, 우주쓰레기가 널부러져 우주항행을 위협한다고 한다. 모두 인간과 지구를 위협하는 쓰레기이지만 인간쓰레기보다 더 흉악한 것은 없다. 다른 쓰레기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대처가 가능하지만 인간쓰레기들은 잘 노출되지도 않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기생하기 때문에 구충약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을 척결하지 않으면 환경오염 정도가 아니라 나라가 위험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독하고 악랄한 인간쓰레기로 이견이 없는 자들은 국회의원이다. 가장 구역질나면서도 가장 부러움을 받는 자들이니 일찌기 이런 희한한 쓰레기가 없었다. 또 하나의 대한민국 대표 쓰레기는 예나 지금이나 언론사의 기자들이다. 쓰레기는 쓸어내면 치워지지만 기자들은 쓸어지지도 않는 지독한 기생충이기 때문에 '기레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나라의 기레기들은 쓰레기 정도가 아니라 정권을 쥐락펴락하는 진영의 핵심이다. 옛날에는 독재자들을 무너뜨린 무용담도 있지만 이들의 눈 밖에 난 정권은 성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할 집단이 되었다.
요즈음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가짜뉴스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다. 뉴스란 믿을 수 있는 기사라고 믿어왔었는데 전혀 황당무계하기 때문에 특별히 가짜뉴스란 말이 생겼다. 기사를 쓰다 보면 냉정한 객관적 관점을 잃고, 본의 아니게 부정확하고, 왜곡되고,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빠진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읽는 기사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고 보면 진짜뉴스와 가짜뉴스가 쉽게 구분되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아주 대놓고 거짓말로 꾸며낸 기사가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것을 헛소문, 유언비어 , 카더라 통신이라고 해서 귀를 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가짜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횡행하고 있다. 가짜가 교묘하게 위장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에 시청자의 눈과 귀가 더 어두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짜뉴스는 기득권층과 노년층, 경제적 소외계층, 부적응자들을 현혹하여 기성 언론을 불신하게 만들고, 사회를 부정적으로 왜곡, 오도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어 사실을 왜곡하고,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것은 나라를 흔드는 범죄이다. 이러다가는 가짜뉴스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가 위험할 지경이다. 사이비 종교가 종교계를 위협하듯이 가짜뉴스가 기성 언론을 위협하고 있다. 가짜가 사실인 것처럼 횡행하면 둘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와 사실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 검정과 흰색이 합해지면 회색만 남는 것처럼 사실과 가짜의 구분도 없어진다.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진리와 허위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것은 선과 악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니 그러고서야 사회질서나 정의가 제대로 설 수 없다. 국론분열이야 늘 있어왔지만 지금처럼 국론 자체가 혼란에 빠진 일은 일찌기 없었을 것이다. 가짜뉴스는 어느 나라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언론을 능가하고 사회를 불신하게 하는 폐해가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들은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니 결국 가짜뉴스도 기성 언론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언론이 죽은 사회는 전체주의 독재국가이다. 대한민국이 아직 그렇지 않은데도 언론이 제구실을 못한다면 언론탄압이 아니라 순전히 기레기들이 스스로 택한 타락이다. 자유당,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수많은 언론인 지식인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서슬 퍼런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토해냈기 때문에 지금의 민주사회가 있을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16년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70위라고 한다. 세계 10위 안에 든다는 국력을 가진 나라에서 70위의 언론 능력밖에 유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기레기들은 용서받지 못할 역사의 죄인들이다. 새 정부 들어서 언론자유는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그 이면은 가짜뉴스가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판을 치고 있는 현실과 관련이 깊다. 지금의 개선된 언론자유지수는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므로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언론자유보다는 가짜와 진실이 구분되던 언론제한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망치는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 가짜뉴스에 대하여 속수무책인 현 정권은 무능일까, 민주주의 신봉자일까?
그래도 옛날에는 언론이 살아있어 국민들이 시비를 가릴 수 있었지만 지금의 유권자들은 가짜뉴스에 속아 진실을 가릴 줄도 몰라서 문제이다. 종편이나 유튜브와 같은 첨단매체들이 쏟아내는 가짜뉴스들이 순진한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문제는 가짜뉴스에 속은 국민들이 그것을 맹신하여 분별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에 기만당한 노인들이
오히려 세상사를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행세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이대로 방치한다면 모든 자유를 잃을 수 있다. 이런 기레기 틈에서는 정상적인 기자들마저 배겨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이 장난이 그치지 않는다면 건강한 언론이 부지할 수 없고, 나라마저 무사할 수 없다. 이들의 간교한 붓장난은 作亂작란에서 온 말이니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부패한 쓰레기들, 바르지 못한 사회, 기레기 언론에서는 총보다 강한 정의로운 언론이 나올 수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 격이라고 매도한 외국 언론의 일갈이 옛날인데도 잊혀지지 않는다.
가야산 일기
최치원
바위산을 내달아 온 산을 울리니 狂奔疊石吼重巒
사람 소리라고는 지척간에도 들리지 않네. 人語難分咫尺間
원래 시끄러운 세상 듣기 싫어서 常恐是非聲到耳
일부러 계곡물을 산에 둘러놓았지. 故敎流水盡籠山
요즈음 뉴스 기사를 시청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듣기 싫은 말이 많고,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많고, 보고 싶지 않은 얼굴 장면도 많고, 멀쩡한 정신이 어지러워져서, 울화가 치밀어서 - 그래서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세상이다. 최치원은 무지한 세상이 싫어서 산에서 숨어 살았지만 지금은 영악하고 간교한 자들이 들끓어서 세상 일을 차마 보고 들을 수 없다. 옛날의 은인들은 세상사를 끊고 맑은 정신을 이어갔지만 지금의 국민들은 세상을 끊지도 못하면서 눈과 귀를 막고 살자니 복장이 매우 편치 못하다. 옛날의 선인들은 세상이 망하거나 흥하거나 독야청청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바가지를 다 뒤집어써야 한다. 그러니 뉴스 기사를 시청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우선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쓰레기들을 투표로써 응징해야 한다.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면 최치원처럼 한가히 산속에서 속 편히 살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치원에게는 지금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복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