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판단하는 데에는 그 공과(功過)와 성패(成敗)와 전후(前後)와 경중(輕重)의 구분이 있어야 한다. 세종은 절대 성군이고, 광해군은 폭군이라고 단정하는 일이 흔하지만 올바른 역사의 평가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면이 있다. 적어도 태종이나 세조에 대한 평가와 같은 신중함이 있어야 할 것이고, 거기에서 소중한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목격한 현대사는 진행형이기 때문에 그 평가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면적이고 일방적 평가를 일삼아 역사는 물론 나라를 심각하게 분열시키고 있다. 지금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보수, 진보의 대립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편향된 역사관의 소행이다. 양 진영의 대립을 통치자를 기준으로 말하면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중심이지 않을까 한다. 보수는 박 대통령, 진보는 김대통령을 정점으로 삼고 있다. 나머지 대통령들이야 그 아류 정도로 보아도 좋을 것이고, 개중에는 사형수를 포함하여 역사에 부끄러운 자들이 적지 않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유신 전의 공로와 유신 후의 과오가 같이 평가되어야 옳다. 다만 무엇이 더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하는지가 역사와 시대의 몫이다. 김대통령은 임기가 짧았기 때문에 역사적 책임이 상대적으로 가볍고, 진보진영 대통령 3을 합해도 박 대통령의 역사적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역사적 위치는 무겁고 크다. 그런데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어 우리의 역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그 극단적 대립이 지금까지도우리의 보수, 진보 대립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데 그 대립각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만약에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오늘날의 극단적 대립도 없었을 것이다.
유신만 아니었다면 박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로 길이 남았을 것이다. 그 전까지의 그 업적에 대해서 부정하는 국민은 드물다. 그가 이룩한 경제발전이야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 국민을 살린 구세주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제일 높은 보릿고개를 없앤 그 공적을 잊는다면 배은망덕한 국민이다. 지금까지도 누구도 그만한 업적을 쌓은 대통령은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거기에서 머물렀더라면 국민은 다음 임기 때에 그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했을 것이다. 그가 일으킨 군사쿠데타도 진정 나라의 장래를 위한 혁명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삼선개헌까지는 아직 그의 우국충정을 인정할 수 있었겠지만 유신헌법을 강행하고부터는 그런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헌법파괴, 민주주의 말살, 양민 학살, 언론 탄압, 인권 유린은 물론 정적들을 샅샅이 뒤져 제거하면서부터는 그는 철저한 권력의 노예였다. 자신의 부하들도 잔인하게 숙청했으니 일반 국민들의 생명과 자유와 인권이야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먹고 살게 되었다고 남의 자유와 인권은 상관없다면 지나치게 이기적인 국민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은 수많은 국민의 처절한 투쟁과 희생으로 얻은 것임을 잊어서는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국민을 기아에서 벗어나게 하고 선진조국의 기틀을 마련한 공로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물질만능주의를 고착시키고, 정의를 파괴하고, 인권과 자유를 유린한 과오의 역사도 지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공과 과오를 합산해서 퉁치자는 것은 역사의 평가도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듯 극단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 양면성을 살펴 공과의 경중이 판단되어야 한다. 그런데 보수층에서는 그의 전반기의 공로에만 매몰되었고, 진보층에서는 그의 후반기의 과오에만 초점이 매겨져 있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다른 면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양 편의 주장을 들어보면 놀랍고 안타까울 정도로 편벽된 주장들이다. 그 잘못된 역사관 때문에 우리는 분열도 모자라 극단의 대립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양면성과 공과의 경중을 엄정히 한다면 보수니 진보니 해서 국력을 양분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정객들이야 파당과 대립이 생존의 수단이기에 그렇다지만 일반 국민들까지 거기에 휩쓸리고 있는 현실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 우리는 이런 역사적 상식을 잊고 사는가? 이념의 대립도 아니고, 민족의 갈등도 아닌 한낱 일개 인물에 대한 판단의 착오로 국론의 분열과 대립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단 말인가? 더구나 박 대통령이 지금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다시 영웅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폭군이 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보수라 해서 박 대통령은 영원한 영웅이고, 진보라 해서 영원한 폭군이라면 역사는 발전이 없었던 것이고, 우리는 우매한 시대착오자들이다. 왜 우리의 보수는 그의 과오는 잊어버리고, 진보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가? 서로 공과를 인정한다면 박대통령이라고 보수의 보스도 아닐 것이요, 김대통령이라고 진보의 영수가 아닐 것이다. 역사의 공과를 인정한다면 박근혜를 박정희로 동일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진보라 해서 그를 역사의 파괴자로 매도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역사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다. 진보와 보수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상생하고 공존해야 할 역사의 순환체이다. 역사는 시대에 따라 지켜야 할 일도 있고, 혁신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보수와 진보는 그 시대의 요청에 의해서 들고 나는 정치 세력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만 항상 옳고 정당하다고 고집하고 있으니 우리의 진보와 보수는 그 본분을 모르는 얼치기들이요, 국민을 속이는 사기꾼이 아닐까? 이제는 국민들도 덩달아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일에만 골몰하지 말고 태극이야말로 보수 진보의 순환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국민은 더 이상 보수니 진보니 하는 정치꾼들의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 정객들에게 보수와 진보란 정권 획득을 위한 명분일 뿐이다. 일부 가진 자들에게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구실이고, 일부 노동자들에게 진보란 극한투쟁을 위한 핑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에게 過猶不及(과유불급)이라는 평범하면서도 무거운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물질만능에 목매고, 무병장수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본분에 충실하다 보면 짧게 살아도, 오래 살아도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을 것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박수칠 때 내려왔더라면 가족의 비극은 물론 나라의 분란도 없었을 것을- 그런데 못난 후예들은 여전히 그의 지나치고, 모자란 것에 목을 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