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아홉 살의 철

노년의 생일은 떠날 채비를 하는 날이다.

by 김성수

며칠 전 예순아홉 번째 생일상을 받았다. 법석 떨 일이 아니니 애들하고 5인 밥상이면 충분했다. 나는 본래 생일이라고 티를 내는 것이 마뜩잖다. 내 생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내 생일도 챙기기 번거로워 내 생일과 퉁치고 넘어가자고 제안하기 일쑤였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아내는 한 술 더 떠 양력, 음력생일, 호적생일, 심지어는 본명 축일까지 따져대니 나에게 생일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생일이란 지가 설쳐댈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로 삼아야 옳다는 생각이다. 자식으로 태어나서 은혜 갚기도 바쁜 처지에 무슨 염치로 다른 사람 졸라서 생일턱을 해 달라는 건가?


더구나 철이 들다 보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부담을 가져야 옳다. 생일 전 날만 해도 만 나이로 따져 1살을 탕감받을 수 있었으나 생일만 지나면 그런 혜택도 없어지니 아무래도 반가운 날이 아니다. 게다가 예순아홉이면 7학년이 코 앞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칠순잔치랍시고 법석을 떨었지만 지금은 턱도 없는 소리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69번째 생일은 데면스럽게 보낼 일이 아닌 것 같다. 숫자 모양으로 보면 6은 아래가 무겁고 위가 가벼워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숫자이다. 그래서 그런지 60대까지는 대개 무난하게 사는 것 같다. 연금을 받고, 혹은 아직 일을 할 수도 있고, 대개는 건강도 유지되기 때문일 것이다. 살 만한 인생의 마지막이니 이번 생일이 더 아쉬워지는 것이다.


7자를 보면 머리를 떨어뜨리고 어깨가 앞으로 굽은 노인이 연상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70이 되면 허리도 굽고, 아니꼽고, 굴욕적인 일이 많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더 살아 무엇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나마 저승보다는 나을 것이고, 쏟아부은 연금도 챙겨야 하니 더 살아 보자는 뱃장이 생긴다. 나 혼자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살고 싶은 것은 인생에 미련이 진해서일 것이다.


8자처럼 꼿꼿이 서 있을 때까지라면 살아도 좋겠지만 기운이 달려 8이 ☍로 기울어 돋보기 쓰고 남의 눈치나 살펴야 한다면 그다지 살고 싶지는 않다.

평균 나이가 이때쯤 끝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렇게 오래 사느니 죽는 게 나아서일 것이지만 그것을 아는 노인네는 드물다. 더구나 치매라도 걸린다면 백 번 죽어 마땅하지만 막상 그 지경이 되면 죽을 지각도 없어진다. 더구나 90까지 살아진다면 글자 그대로 지금 6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아야 된다. 6자가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9자가 되어 살아야 한다면 매사가 숨이 막힐 일이다. 설령 건강에 자신이 있더라도 노령화 사회에서 자식과 사회에 짐이 되면서 구차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한자의 모양으로 보아도 一, 二, 三, 四, 五는 모두 안정된 모양새다.

六은 두 다리가 몸을 받치고 있으니 그나마 살 만한 모양새라고 하겠다. 그러나 七이라면 허리가 옆으로 기울어진 꼴이니 이미 육체적으로도 안정감이 적다. 八자는 본래 갈라지고 헤어지는 別자의 의미이다. 나와 세상의 행선지가 어긋나 있으니 八자는 본래 고독하고 불안한 모양새다. 九자는 구부러진 몸을 받쳐 줄 지팡이마저 기울어 있으니 간신히 기어가는 딱한 노인의 모양새이다. 엉터리 숫자놀음이라고 하겠지만 그런대로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우스갯소리로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백 년 인생을 자주 말하지만 그것은 본인은 물론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장수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거둔 보람에 있다. 백 년을 살아도 보람이 없으면 헛 산 것이요, 오십을 살아도 보람이 있었다면 장수한 것이다. 더구나 오래 살아서 사회에 걸림돌이 된다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살아남는 자가 승자’라는 생각은 천박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런 노인들이 많은 사회는 불행하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 수 있을 때까지가 나의 인생이다. 나머지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늘이나 의사한테 얻어 온 덤이다. 덤이란 정량에 더 얹어 주는 것이니 정량보다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70 이후로는 덤으로 받은 불편한 인생이다. 구차한 덤에 의지하며 연명하느니 차라리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떳떳하고 당당한 인생이다.

남이 아쉬워할 때, 서운해할 때 떠나야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살았다가는 있는 정까지 다 떨어진다. 십 년, 이십 년 덤을 챙기자고 내 인생을 천덕꾸러기로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소리를 하면 ‘살고 죽는 것이 니 맘대로냐?’고 비웃는 사람이 많겠지만 너처럼 기를 쓰고 무병장수에만 목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품위있게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세먼지, 중금속 오염, 환경오염, 방사능 오염, 암, 중풍, 각종 노인증후군, 코로나- 늙은이 목숨을 기다리는 저승사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약봉지 부여쥐고 병원 문턱을 쥐살나게 드나들지 말고- 언제까지 뻔뻔스럽게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지 말고- 당당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떳떳하게 떠날 일이다. 아직 예순아홉 살 철부지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죽는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대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이라고 믿고싶다. 호흡기 달고 골골대며 불효자식 만들 게 아니라 두 발로 휘적휘적 고향으로 돌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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