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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Sep 02. 2020

시무7조 유감

우리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의사회 구현이다.

  요즈음 어느 시민이 대통령께 올린 시무7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에 맞선 어느 시인의 하교(下敎)도 나왔고, 또 한 편의 상소 ‘영남 만인소’가 시무책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상소, 하교라는 옛날 용어를 쓰고 있지만 날이 선 정치적 패러디입니다. 날카로운 시국분석과 능란한 필치로 현 정부를 신랄하게 풍자하여 많은 사람들에게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덩달아 그 판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막상 이러한 글들은 인기에 걸맞지 않게 편견과 지엽적인 데에 매몰되었고, 독단과 희필(戲筆)에 치우쳐 있어 사실과 본질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런 글들이 절제 없이 유통되는 것은 문제가 있겠다 싶어 이와 관련된 한 가지만 말하고자 합니다. 다 말하자면 원문보다 몇 배는 더 늘어날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혹시 ‘정의’라는 이름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있더라도 정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회’라는 말에 ‘사회주의’를 떠올릴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대립어가 ‘개인주의’라면 사회주의가 본래 나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의 특성이 ‘사회성’이라면 사회주의는 가장 人間다운 용어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라면 트라우마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만의 특수한 사정입니다. 그러므로 ‘정의사회’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세계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정의사회가 더 절실하게 생각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매우 정의롭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사회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아니 불행하다고 한다면 그만큼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정의사회는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국민적 과제가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이기주의, 개인주의, 자본주의는 물론 민주주의보다도 더 우선하는 가치관일 것입니다.

  시무조에 쾌재를 부르는 사람들은 코앞의 문제가 산적한데 그런 한가하고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운다고 하겠지만 사람이라면 밥 먹는 일에만 골몰하기보다는 왜 밥을 먹어야 하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시무7조처럼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하기보다는 눈과 귀를 열어두고 본질적인 문제부터 생각해야 성숙한 국민일 것입니다. 대통령이 그렇지 못하다면 국민들이라도 그래야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한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기주의, 개인주의, 자본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이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글로 말한 적이 있으므로 줄입니다만 민주주의는 이기주의, 개인주의, 타락한 자본주의, 집단이기주의, 폭력적 시위행동, 가짜뉴스나 시무7조마저 용납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간단히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우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국민이 '주인의식'이라도 갖는 것입니다. ‘국민이 주인’이 틀림없다면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자본주의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기 마련이어서 다수의 국민은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좋다는 빨갱이가 아니라 우리가 내세우기 좋아하는 개인주의, 자본주의가 정작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끝마다 개인주의, 자본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많지만 우선 기회불공정과 소득불균형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집값 상승이 온 나라와 정권을 흔들고 있는데 거기에는 투기라는 불가사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투기는 단순한 불공정 행위가 아니라 국민정신을 갉아먹는 악성 종양입니다. 거기에 한번 빠진 사람은 마약중독자처럼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억울한, 정당한, 때로는 우연한 다주택자도 있겠지만 터무니없는 집값은 망국적 투기꾼이 그 주범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정부에서 집값을 다잡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집값을 잡기 위한 노력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투기와 미친 집값을  '시장의 원리'라고 정당화하는 축은 투기꾼이거나 타락한 자본주의자들이기 십상입니다. 이런 혼란을 시장의 원리라고 방치하는 것이 설마 국민이 바라는 민주주의일 리 없습니다. 일부 정당한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수의 투기꾼을 단속하지 못한다면 장독 안에 기생하는 구더기를 방치하는 것이요, 꿀단지에 숨어 사는 생쥐를 키우는 꼴입니다.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99마리 양을 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이지, 아흔아홉의 국민을 지켜야 할 통치자가 할 도리는 아닐 것입니다. 일부 몰지각한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선거만 챙기는 비겁한 위정자일 것입니다. 소수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 국론분열을 획책하는 가짜뉴스를 방치한다면 나라의 안보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국민의 이익과 행복에 반하는 집단 이기주의자들에게 정부가 끌려다닌다면 무능한 정부일 것입니다.   

  시무7조를 일일이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부동산 문제에서 기득권에게는 너그럽고, 투기라는 망국병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어 유감입니다. 구태여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현란한 글 솜씨로 행여 투기꾼이나 특권층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비호할 생각이라면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를 기화로 하여 파렴치한 투기꾼, 불공정한 사법부, 뻔뻔한 집단이기주의자, 황당한 가짜뉴스꾼들이 더욱 횡행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정부의 레임덕을 학수고대하는 정객들이 득실대지만 그렇게 되면 국민들한테는 재앙이 될 것이니 끔찍한 일입니다. 물론 정책의 시행과정에서 미숙과 시행착오가 많았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투기꾼과 천박한 자본주의자들이 횡행하는 한 우리가 바라는 정의사회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시무7조, 만인소보다 더 시급한 문제일 것입니다.

   다만 정부에서는 시무7조나 만인소가 악의에 찬 비방이라거나 기득권, 특권층을 지켜내려는 교묘한 요설(饒舌)이라 규정하여 일소에 붙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下敎’와 같은 우격다짐으로 대처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국민의 공분을 사는 일이라도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공권력을 재촉하는 것은 지존의 위엄에 손상을 입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국민의 지지와 관심을 받는다면 그것도 민심으로 알고 두려워하며,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개혁에 나선 장관들이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 구설수에 오르는 것 차체가 잘못된 일입니다. 똥 묻은 개를 나무라려면 자신에게는 물개똥도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부, 여당의 미숙과 시행착오는 더 이상 양해될 시간과 기회마저 없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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