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는 팬데믹의 대안이 아니다.
특별한 사람이나 썼던 마스크가 이제는 인간의 얼굴을 완전 정복하였으니 마스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스크를 다른 말로 하면 가면일 것이고, 고유어로 말하면 얼굴 가리개 정도이겠지만 그 걸로는 지금의 마스크의 위력을 대신할 수 없다. 마스크의 원조인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은 적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겁에 질린 개나 고양이도 위기에 몰리면 패악질을 하는데 인간은 얼굴 표정이나 완력으로는 부족하므로 그 대신에 위협적인 가면을 썼을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식이 있었는데 제사장은 보통 사람과 크게 달라야 위엄이 섰을 법하다. 만약에 제사장이 특별하지 못하거나 힘이 없었다면 더욱 가면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라서 행세깨나 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개 가면을 쓰기 마련이다.
가면은 고대 연극에서 필수였다. 고대 연극에서 주인공은 특별한 개성과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것을 맨얼굴로는 드러낼 수 없으니 가면이 필요했던 것이다. 가면(假面)이란 말은 가짜 얼굴이고, 고대 연극은 가면극이 주류였다. 그래서 ‘가면’ ‘연극’은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게 되었고, ‘배우’는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도 갖게 되었다. 심지어는 사람의 맨 얼굴도 그 사람의 진면목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일이 많다. ‘얼굴마담’ ‘얼굴사장’의 ‘얼굴’은 마스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면이란 허위, 허세, 위장, 변장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안면 위장으로도 부족해서 몸 전체를 변장하는 둔갑술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면이나 변장이 늘 범죄나 악행의 도구만은 아니어서 때로는 익명의 기부자, 선행자도 있고, TV프로에는 복면가왕도 있고, 슬픈 삐에로도 있고, 요즈음 젊은이들한테는 할로윈 가면도 유행한다고 한다. 그러니 가면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가면은 나약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였듯이 사람의 얼굴을 감추어 주는 역할도 한다. 짐승과는 달리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얼굴에 있다. 얼굴만 드러내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신을 감출 수 있다.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출세의 비결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라야 가능한 일이고, 평범한 사람이나 약자는 얼굴을 감추는 것이 상책이다. 설령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라 해도 유명세를 치러야 하는 부담이 있게 마련이다. 검찰에 출두하는 혐의자들은 카메라 앞의 포토라인을 두려워한다.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리는 흉악범들을 보면 인권보호가 야속해진다. 현대인들은 얼굴뿐 아니라 개인정보도 감추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횡액을 당할지 모른다. 이래저래 진실과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좋건 싫건 위장을 하고, 가면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익명성의 시대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가면이 가지고 있는 좋지 않은 이미지 때문에 희생을 무릅쓰고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살다 보니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할 판이다. 이제는 마스크는 나를 보호하는 가면이 아니라 남의 생명을 지키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자신이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가족과 사회의 기피대상이 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험악한 가면과는 달리 하얀 마스크를 쓰면 본래 얼굴보다 더 보기 좋아진다는 것이다. 코로나 대비책으로 마스크만 한 것이 없고, 거기에다 맨얼굴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 준다는 것은 화장, 분장의 효과마저 거둘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참으로 고통스러워졌지만 사람의 얼굴만은 훨씬 아름다워졌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 맨 얼굴보다 더 예쁘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잘 몰랐었다. 사람의 얼굴 중에서도 눈이 가장 예쁘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눈만 빠꼼하게 보이는 얼굴 중에 미운 얼굴은 찾아보기 어렵다. 쌍꺼풀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눈만 보면 충분히 아름답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더니- 사랑은 눈빛으로 통한다더니- 사람은 눈으로 말한다더니- 마스크를 쓴 얼굴은 눈 화장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돈도 안 들이고, 얼굴도 예뻐지고- 그래서 마스크를 즐겨 쓰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요즈음 화장품 업계의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니 코로나 피해는 도처에 널려 있다. 곁들여 생각하는 것은 코와 입과 턱은 상대적으로 예쁘기가 어렵겠다 싶다. 단순호치(丹脣皓齒)라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예쁜 입술과 치아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코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잘 생기기가 어려운 것 같다. 코 성형수술이 실패가 많은 까닭이다. 그러니 마스크가 얼마나 고마운가?
마스크가 사람의 얼굴을 아름답게 하더라도 코로나는 제발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코로나 백신이 나오더라도 그보다 더 센 놈이 또 올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마스크로 저항할 수 있는 코로나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전염병의 하나일 뿐이다. 다음에 오는 전염병은 또 무슨 수로 대항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코로나는 신이 내린 징벌이기에 앞서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여 자초한 재앙이다. 코로나의 대안인 마스크와 거리두기는 인간사회를 단절시키는 극약처방이다.
인간이 오만과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이런 끔찍한 팬데믹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편의주의, 개발주의, 물신주의가 코로나의 주범이다.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고, 물질과 경제효율만 추구한다면 코로나와 같은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만 해도 이미 세계대전만큼이나 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지 짐작하가 어렵다. 지금 우리 에너지 정책을 두고 말이 많지만 화석연료는 대기를 파괴하고, 원자력 발전은 땅과 바다를 오염시켜 지구의 재앙과 파멸을 재촉하고 있다. 그것은 태양광 발전으로 산림이 훼손되는 정도가 아니다. 마스크, 백신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다소 불편하고, 비싼 전기료를 물더라도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여 에너지 소비와 탄소. 온실가스, 방사능의 배출을 줄이는 것이 지구와 인간을 보존하는 길이라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