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하는 것은 교사들의 고질병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더부살이하고 있는 동산에 자주 오르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오솔길에 덮인 낙엽을 밟으면서 걷는 멋이다. 작아서 동산이라고 하지만 산에 있을 건 다 있는 공주같이 예쁜 동산이다. 때로는 낙엽에 미안한 맘도 들지만 딱딱한 아스팔트나 흙바닥을 밟는 것보다는 마음까지도 포근하고 부드러워져서 좋다. 그런데 오늘 길에 오르니 누군가 깨끗하게 비질을 해 놓아서 숲길 흙바닥이 가지런해져 있다. 1킬로는 되는 길을 이렇게 깔끔하게 쓸어놓은 일은 보통 정성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서 고마운 마음이 컸다. 남을 위해서 이렇게 애쓰는 분도 있는데 나는 너무 이기적으로 사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맨바닥이 드러난 오솔길이 딱딱하고 건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깨끗이 쓸어낸 뜻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려 한 것인데 낙엽이 쓸려나간 흙바닥 길은 나한테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이는 동시에 나도 이런 선의를 가지고서도 의도하지 않은 불편함을 저지르는 수가 많겠다 싶다.
대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를 좋아하면서도 남에게 배우기는 싫어하는 본성이 있다. 先生님이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산’ 사람이니 당연히 경험과 아는 것이 많아야 하지만 먼저 태어났다고, 더 배웠다고 반드시 그런 법도 없다. 그런데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선생님은 아는 것이 적더라도 ‘아는 척’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기를 수십 년 하다 보면 그것이 하나의 습성이 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그렇게 믿어버린다. 아는 걸 안다고 하는 것이 잘못될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나보다 더 아는 사람 앞에서 그런다면 푼수요, 나보다 못한 사람한테 그러면 아는 척이 되어 아니꼽기 십상이다. 푼수도 아니꼬움도 사회생활에 좋을 일이 별로 없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기도 어렵지만 ‘아는 척’을 곱게 받아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짓을 일삼아 먹고사는 사람들이 선생들이다. 그리고 그 버릇은 퇴임을 하고 나서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으니 교사의 비애가 끝나지 않는다. 물론 어린 학생일수록 교사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 때문에 괜찮지만 학생의 머리가 커질수록 아니꼬워하는 심사가 늘어간다.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이 생겨 수업 중에 무슨 말을 하기도 겁이 난다. 최고학부의 학위과정 정도에 이르면 마지못해 듣는 척하지만 이미 교수 머리 위에 앉아있는 학생이 적지 않다. 학생은 아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만 어지러이 아는 척하는 것은 폐를 넘어 정신적인 폭력일 수도 있다. 어설픈 교수의 아는 척이 학생의 연구 성과를 망가트리는 일도 적지 않다. 그래도 교수는 그것이 자신의 당연한 의무요, 누려야 할 권위라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교육자로서의 의무요, 선의라고 하겠지만 오히려 학생에게 원한을 사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선생들은 알게 모르게 그런 짓을 자주 저지른다. 선생 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드무니 ‘아는 척 병’은 위선과 함께 교사의 운명적 비애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선생의 좋지 못한 습성을 학교를 떠나서도 여전히 고치지 못하는 일이 많다. 남이 잘 못 알거나 옳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아는 척 병’이 도지기 십상이니 일종의 직업병인 것 같다. 학생에게야 갑이니 이 병을 고스란히 다 받아주었지만 사회에서야 그 선의를 곧이곧대로 수용해 줄 리 없다. 그래서 선생 출신은 주위의 경원을 받기 쉽다. 敬遠(경원)이란 존중은 하지만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은 일종의 경계 심리이다. 사회에서는 아는 척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그 선의를 그대로 받아 줄 사람들은 훨씬 적다. 그래서 선생들의 선의와 친절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잦다.
나로서는 선의요, 친절이더라도 상대에게는 악의요, 아니꼬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보다 더 낫기를 바라거나, 남이 나보다 우월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본능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르치기를 좋아하거나 아는 척하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습성을 거스르는 짓이다. 겉으로는 '선생출신이라 달라'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언제까지 선생노릇'이라며 못마땅해한다. 그런데 어떤 선생은 같은 선생 앞에서도 아는 척을 하기도 하니 고질병이 심하다. 모름지기 어지간해서는 아는 척하지 말 일이다. 침묵의 미덕이란 말도 있지만 기왕에 마스크를 썼으니 되도록 입을 무겁게 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고 했다. 똑똑하고 박식하다고 인정받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경망스럽고 아는 척한다는 뒷말을 듣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입을 벌려 좋은 평가를 받을 자신이 없다면 최소한 수치스러운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가벼운 입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선생들은 그런 실수를 자주 하니 모름지기 늘 삼가고, 또 조심하면서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