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비애 3
교사는 숙명적으로 슬픈 존재이다.
그토록 소망했던 학교의 현실은 교사의 본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놓아주지 않는다. 우선 수업을 생명으로 알았는데 수업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잡무에 쏟아부어야 한다. 수업보다는 잡무처리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일선학교의 현실이다. 물론 해야 될 일도 있지만 수업과는 관계없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잡무이다. 잡무에 시달리다 보면 교재연구는 물론 수업마저 빼먹는 일도 있어 학생의 학습권마저 보장되지 않는 일도 흔하다. 소규모 학교일수록 더 심하다. 교사 초년 시절에 교감선생님이 한 말이 지금도 기억된다. ‘수업 잘 한다고 훌륭한 교사가 아니다.’ 지식보다는 인성이 더 중요하다면 맞는 말이지만, 이른바 ‘유능한 교사’란 잡무처리 능력을 말한 것이었다. 교재연구, 수시평가, 성적처리, 학생생활지도에도 시간이 모자란 판에 행정공무원이 할 잡무처리에 시달리는 교사들은 슬프다.
교무실은 연공서열로 엮어진 관료조직체이다. 막강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교장, 교감이 그에 상응하는 능력과 인품을 늘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실력과 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연공서열이나 직위에 밀려 능력이나 교육적 소신을 펼치기 어려운 것이 학교의 관료조직이다. 한 군데 모여 있는 교무실의 세대 차이는 나이에 상관없이 교사들을 힘들게 한다. 나이가 많은 교사는 싹수없는 철딱서니라고, 젊은 교사는 어쩔 수 없는 꼰대라고 서로가 비난하고, 경계하고, 경쟁하고, 갈등을 벌인다.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학부모에게서 교권을 지켜야 할 교사들로서는 이런 경직된 조직문화에 더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교사 발령을 받고 나면 승진과 평교사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한다. 교장은 교육자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정된 자리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승진하려면 일찌감치 점수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점수관리란 근무평정, 연구점수, 경력쌓기, 벽지점수를 착실하게 쌓아두는 것이다. 근무평정이란 학교장이 교사들의 근무상태를 평가하는 것으로 그것을 나쁘게 받으면 승진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교사들은 근평을 높게 받으려고 갖은 노력과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된다. 물론 근평이 좋은 교사가 좋은 교사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늘 교장과 교사 간의 갈등의 요인이다. 연구점수란 현장연구 활동에 대한 실적이다. 현장연구 활동은 당연한 일 같지만 과중한 수업과 업무는 현장연구를 어렵게 한다. 그리고 실제 수업능력, 실적과 연구는 전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경력쌓기란 승진을 위해서는 일정기간의 업무적 경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경력은 업무적 능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능력과 상관없이 험한 경쟁이 되고 있다. 지방교육청의 경우 벽지학교 경력이 없으면 승진이 어려워서 열악한 벽지근무가 오히려 경쟁이 되는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승진을 위한 고육책이다. 성실하게 근무하다가 자연스럽게 승진이 된다면 좋겠지만 한정된 자리이다 보니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교사는 승진을 하지 못하게 된다. 능력 없는 교사는 당연히 승진하지 못하겠지만 ‘진정한 군인은 별을 달지 못하고, 진정한 교육자는 교장이 되지 못한다’는 자조적인 탄식은 과장되었더라도 전혀 헛된 말도 아니다. 그러기에 소신 있는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 기꺼이 승진을 포기하는 교사는 박수를 받아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승진을 포기한 교사는 교장으로서도 통제곤란한 문제교사일 경우가 많아 교장마저도 슬프게 한다. 승진자는 살벌한 경쟁으로, 포기자는 무기력과 상실감으로 슬퍼한다.
군사부일체라는 의식이 강했던 우리 전통에서 교직은 성직에 가까웠다. 그러나 서구의 교육관이 주류가 된 오늘날에는 교사도 그저 그렇고 그런 직업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성직은 고사하고 전문직이라는 소신마저도 부정되고 있다. 참교육을 부르짖는 교사들도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노동자를 자처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전문직으로도 어려운 참교육이 일반 노동자로서 잘 될까 싶지 않다. 교사는 학생의 모범이 되고,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이 교사의 양심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학생의 모범이 되기 어렵고,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교직을 그저 생활수단으로 만족하는 교사도 늘어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교사의 비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신도 포기하고, 존경과 권위도 포기하면 차라리 속이 편할 것 같지만 교육자의 긍지와 보람도 없이 산다면 서글픈 인생이다. 그러니 소신과 존경을 생명으로 아는 교사이건, 생존수단으로 삼는 교사이건 비애를 벗어날 수 없다. 옛날과 같지 못한 교사를 탓하기도 하지만 이런 비애는 교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든 비극이다.
교육자와 평범한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교사의 숙명적인 비애이다. 정상적인 교사라면 학생의 수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소신이다. 지식적인 면에서나 인격적인 면에서 학생의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면 교사의 존재가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는 정직하고 솔직할 자유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교사는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학생 앞에서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교사가 평범한 인간에 그친다면 수범적인 교육자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만 가르치고, 숨김없이, 솔직하게 언행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다면 교사로서 수범이 될 수 없고, 권위가 서지 않는 것이다. 언행일치를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건 인간으로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교사는 어쩔 수 없이 위선적인 언행을 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인 것이다.
청운의 뜻을 품고, 어렵사리 꽃길에 올랐지만 교사에게는 일일이 말할 수 없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현실에서 소신과 소망을 펴 보기도 전에 좌절하는 교사가 적지 않다. 소신과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 우리 교육의 현장이다. 개중에는 소신이 잘못된 교사도 있어 자신은 물론 다른 교사까지 슬프게 하는 문제교사도 있다. 물론 많은 교사들은 그 현실에 적응해 나가고,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묵묵히 교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많은 교사들은 생존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교사의 비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육의 비극이어서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