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도덕적 의지'이다.
우리 생활에서 자유라는 말처럼 흔한 낱말이 드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소유의 자유, 자유경쟁, 자유무역, 자유부인, 자유연애 결혼, -우리는 자유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자유라는 말이 성행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유가 필요하다는 반증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자유가 없었기에 우리는 그토록 해방을 열망해오며 살았었다. 자유당 시대와 군사독재 시절에는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유를 위해 처절하게 투쟁해 왔다. 지금까지도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자유가 부족하다는 말이고,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면 사회가 어지럽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유가 가장 존귀하고,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백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자유라는 말은 존재하기조차 어려웠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자유는 서구에서 들어온 새로운 정치적 문명어에 속한다. 영어 Liberty, Freedom을 번역한 말이 自由이다. 이 자유를 ‘내 마음대로’라고 생각한다면 번역이 잘 못되었거나 번역 과정에서 개념 정립이 잘 못된 말이다. Liberty, Freedom은 원래 ‘ 마음대로’가 아니라 ‘구속 억압에서 해방된 상태’를 의미한다. ‘해방’하고 ‘내 마음대로’는 별개의 단어이다. 감옥에서 석방되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석방 후에 내 마음대로 했다가는 다시 감옥에 가야할지도 모른다. 자유는 법과 의무를 준수했을 때만 보장되는 것이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자유는 다시 잃게 되는 법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는 자유의 본고장인 서양에서도 정립하지 못했던 철학적 방종이거나 정치적 기만에 가까웠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자유지상주의, 신자유주의라고 정당화하지만 Liberty, Freedom을 제대로 번역했다면 ‘자유’가 아니라 ‘자율’(自律)이라고 했어야 옳았다. 칸트는 ‘자유의지’를 주장했는데 그 자유는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나의 의지, 즉 ‘자율’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의 요체도 인간의 ‘자율 의지’였다. 서구인들은 개인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자율정신을 존중하기에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자율 의지’는 놓치고 ‘내 마음대로’라고 마음대로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대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 놓고, 민주주의가 마치 ‘내 마음대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그래서 우리의 자유는 민주주의마저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자유라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실제로 인간 세상에는 자유로운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自由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道家철학에서도 ‘自然에 순응하는 것’이 자유라고 했다. 도가의 자연이란 천지 운행의 섭리이다. ‘자연의 뜻에 따르는 것’이 자유라고 했으니 그것은 절대로 ‘내 마음대로’가 아니었다. 노자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면 성인이라고 했다. 그것은 공자도 일흔이 넘어서야 가능한 경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철부지 어린애들도 아무렇게나 자유를 외치고 다닌다.
자유라는 말도 좀 엉뚱해서 自자는 원래 코(鼻)를 그린 상형문자였다. 코는 호흡을 하는 출발점이어서 원래는 ‘내’가 아니라 ‘ - 부터’라는 뜻에서부터 시작한 글자이다. 창시자나 개척자를 鼻祖(비조)라고 하는 이유이다. 由자는 ‘밭(田)에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을 가진 상형글자로 ‘여기서부터 내 밭의 경계가 되는 곳’이니 남들은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뜻에서 시작된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유란 절대로 ‘내 마음대로’가 아니었다. 언어란 의미의 변화가 있기 마련이지만 자유란 적어도 ‘내 마음대로’는 아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내력으로 해서 옛 기록에는 자유라는 말보다 不自由-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의무, 책임- 라는 말이 훨씬 많았다. 그러니 지금 우리한테 자유라는 말은 본의와는 다른 오역(誤譯) 내지 오용(誤用)이다.
적어도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말은 동의어나 대등하게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민주주의의 가장 숭고한 가치로 생각하지만 자유가 ‘내 마음대로’였던 시대는 억압과 구속에서 해방되었던 일시적인 사회현상이었거나 혼란한 시대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임과 의무가 따르지 않는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자유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책임과 의무를 수행해 왔다고 언제까지 자유타령만 할 것인가? 가짜뉴스나 왜곡된 기사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인가? 남의 인권과 사회의 질서를 짓밟으면서 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인가? 가진 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독점하는 것이 보호받아야 할 사유의 자유인가? 특권층이 온갖 불공정 행위로 신분을 고착화 시키는 것이 금수저의 자유인가? 그 부당한 자유를 위해서 회사와 나라는 망해도 내 생존과 내 권력만 소중한가? 진실을 알지 못하고,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공정한 기회를 갖지 못하는 다수 국민의 생존의 자유는 언제까지 박탈되어도 좋은가?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자유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