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나이는 자랑이 아니다.
이제 어김없이 칠순이 되었다. 만으로 하면 아직 60대이지만 나이를 자랑으로 알았던 우리는 제 나이에 1을 더하여 서둘러 칠순이라고 이름하여 잔치를 벌이고, 심지어 수의(壽衣)까지 미리 만드는 수선까지 떨었다. 수의를 만드는 것은 죽을 준비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사람이 죽으면 입히는 옷이 수의인데 그것이 오히려 장수(長壽)를 하게 한다니 그 발상이 매우 반어적이다. 중국에서는 장례식의 관(棺)에까지 壽자를 써놓았으니 그 억지가 더 심하다. 옛날이야 70이 고희라 하여 자랑스러울 수 있었지만 지금이야 흔한 일이 되었으니 반갑지도, 자랑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나이 먹는 것을 부담스러워 해야 옳다. 세상에는 먹다가 탈 나는 사람이 제일 많다. 그래서 음식은 소식을 해야 하고, 관직에 있으면 청렴해야 하며, 나이를 먹었으면 그에 합당한 나잇값을 해야 탈이 없는 법이다. 칠순을 들먹이는 것은 나잇값을 장담하는 것이기에 남들이 한다고 덩달아 따라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칠순을 가리키는 ‘고희’란 말은 원래 두보의 <曲江>이란 시에서 나왔다. ‘가는 곳마다 술빚은 깔려있는데(酒債尋常行處有) 칠십 인생은 자고로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 이런 내력이 있어서 고희란 흔히 일흔 살을 점잖게 일컫는 말로 통한다. 예순도 살아보지 못한 두보로서야 칠십은 바라기조차 어려운 나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 ‘고희’란 고작 외상술값에 쫓기는 궁색한 시인의 신세한탄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렇게 내놓고 자랑할 말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값어치는 희소가치에 의해서 결정 나는 것이니 지금의 고희는 낙장이다. 더구나 심신이 허약한 늙은이야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살았으니 고희야말로 아직도 안 죽고 악착같이 살아남은 나이이다. 꽃으로 말하면 시들어 추한 모습으로 악착같이 가지에 붙어있는 꼴이고, 비 맞은 채 유리창에 늘어붙은 낙엽이 아닐까? 옛날에는 칠십이 넘으면 궤장(机杖)이라는 지팡이를 하사하여 원로대신으로 삼았다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지팡이 짚고서 집에서 편히 쉬라는 통지였다. 그래서 지각 있는 신하는 그 나이가 되면 서둘러 사직서를 올렸다. 그것을 걸해골(乞骸骨)이라고 했는데 이제 죽을 때가 넘었으니 죽음을 준비하게 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이렇게 보면 칠순이란 자랑할 나이가 아니라 서둘러 자중하고 근신할 줄 알아야 하는 나이이다. 더구나 초고령화사회에서 칠순을 누가 진심으로 축하해 줄 것 같지도 않다.
계제에 숫자놀음을 좀 해 볼까 싶다. 七자의 모양을 보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인이 지팡이를 빗겨 짚은 꼴’로 보인다. ‘칠십 청춘’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나마 분수를 아는 노인들은 七자의 묘미에 감탄할 것이다. 7자를 들고 보아도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노인네 모습’과 멀지 않다. 숫자를 발명한 수학자들이 허투루 글자를 만들지 않았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七이건, 7이건 칠순이란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짖는 ‘Lucky seven 황금연못’이 아니라 이제 겸손하게 몸을 굽혀 갈 때를 준비하라는 조물주의 메시지라는 데에는 동서양이 다름이 없는 듯하다.
평범한 노인들이야 공자처럼 ‘칠십이 되니 내 마음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와 같은 높은 경지에는 이를 수 없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까도 싶다. 그 정도만 되어도 七이나 7의 나잇값은 하는 셈이 아닐까? 나잇값이 쉽지는 않겠지만 노인다운 생각과 처신과 염치를 차릴 줄 안다면 젊은이들이 말하는 ‘꼰대’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런 나잇값 하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말이 그렇지 ‘때에 알맞은 생각과 처신을 가려서 하고, 매사에 염치를 차린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나이 칠십이 되기도 전에 이미 기운은 고사하고 총기도 떨어져 가는데 그게 어디 맘대로 될까? 칠십도 그런 형편에 말대로 백세 장수를 한다면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예수는 물론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도 전혀 살아보지 못한 80, 90, 100년을 보통 노인네들이 무슨 수로 나잇값을 해가며 살 것인가? 백수를 넘나들며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인도 있다지만 오래 살다 보면 무슨 말 못 할 사정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치매라도 걸리면 짐승만도 못한걸- 그런 건 아랑곳없이 백 년 장수를 장담하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아예 나잇값 할 마음마저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나잇값 할 의향도 없이 그저 오래 살 생각만 하는 노인들이 그리 많다면 칠순잔치는 말할 것도 없고, 88미수(米壽), 99백수(白壽)잔치야말로 파렴치한 법석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장수를 노리기보다는 모름지기 차분히 나잇값을 챙겨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