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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r 27. 2021

漢詩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4

봄을 기다리며

    春日춘일   봄맞이   

                            徐居正서거정(1420-1488)     


金入垂楊玉謝梅◎            금빛은 버들잎에 드는데 옥빛은 매화를 떠나고, 

小池春水碧於苔◎            작은 연못물은 이끼보다 더 푸르다.               

春愁春興誰深淺                봄 시름과 봄 흥은 무엇이 더 깊은가?                    

燕子不來花未開◎            제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는데-                 

                               <우리시로 읽는 漢詩>     


   이 시는 한 폭의 춘경도(春景圖)를 보는 것 같은 서경시입니다. 봄의 경치 묘사에 주력하면서도 한시의 율격을 충실히 지켜 그 전형적인 형식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7언시는 5언시와는 달리 첫구에서도 압운을 합니다. 특히 능숙한 솜씨로 金빛, 玉빛, 碧(청옥) 苔(이끼) 등 선명한 색채감을 살려 봄의 정경을 생생하게 그려낸 수법은 이 작품을 최고의 한시로 손꼽게 합니다. 시어도 자연스러워 원시의 의미구조를 지켜 번역하여도 무리가 없어 비교적 수월합니다. 봄에 대한 감각적이고, 섬세한 정감을 옮겨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작자는 우리 한시문학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가장 오랫동안 학문을 관장하는 대제학을 지낸 관료시인으로도 유명합니다.      


   金금入입垂수楊양玉옥謝사梅매.  

   謝는 入에 상응하는 글자이므로 반대어 出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나가고’라고 하기보다는 ‘떠나고’라고 해야 시의에 더 좋습니다. 매화가 시든 모습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버들잎의 빛깔을 금빛으로, 매화의 빛깔을 옥빛으로 비유한 색채감각이 뛰어납니다. 원시에는 ‘垂-늘어진’이 있지만 이를 옮기면 번역시가 너무 길어지고, ‘잎’은 없지만 원시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것은 ‘버들잎’이므로 번역시에서는 있어야 좋습니다. 한시는 한시 특유의 형식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글자를 생략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글자를 넣기도 하므로 번역할 때는 원 상태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의 번역은 산문과는 다릅니다. 옥빛이 떠났다고 했으니 매화는 이미 시든 꽃이지만 그것은 겨울이 지나가고 새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봄의 전령사이고, 매실 열매를 기약하는 모습이어서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금빛은 버들잎에 드는데 옥빛은 매화를 떠나고,’     


  小소池지春춘水수碧벽於어苔태.   

  小池는 작은 연못, 春水는 봄 물, 碧은 ‘푸르다’, 苔는 ‘이끼’, 於는 ‘-보다’라는 비교격 조사. 물이 이끼보다 더 푸르다고 과장함으로 해서 더 선명한 색채감각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春水가 푸른 것이 아니라 이끼, 苔가 푸른 것이죠. 마치 못 물이 파란 이끼에 물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교묘한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작은 연못물은 이끼보다 더 푸르다.’  


 春춘愁수春춘興흥誰수深심淺천.  

 ‘春愁- 봄 시름’과 ‘春興- 봄 흥’이라는 정감을 비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봄에 대한 시름과 흥은 반댓말 같지만 작자로서는 다 같이 봄을 누리는 아름다운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작자로서는 시름이 깊은지 흥이 더 깊은지 상관없이 봄의 흥취는 넘쳐난다는 것도 이 시의 묘경(妙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誰는 ‘누구’이지만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深淺을 다 옮기려 하는 것보다는 淺은 생략하는 게 더 세련된 시어입니다. 원시의 글자를 반드시 옮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때로는 원시에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봄 시름과 봄 흥은 무엇이 더 깊은가?       


  燕연子자不불來래花화未미開개.  

  燕子는 제비. 不來는 오지 않다, 子는 아들이 아니라 燕에 붙는 접사에 불과합니다. 모자(帽子), 의자(椅子)처럼-  未開는 아직 피지 않았다. 제비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으니 아직 어설픈 봄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비와 꽃 사이에 정해진 선후관계도 없고,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봄을 이루는 자연현상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제비와 꽃을 어떤 연결어미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詩境은 달라집니다. 이렇게 감각적이고 섬세한 시의 번역에서는 특히 어미, 조사의 역할이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특히 4구의 번역에 묘미가 있습니다. 燕子不來와 花未開를 대등관계로 잇는가, 인과관계로 이어주는가에 따라서 詩境이 달라집니다. ‘제비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다’면 봄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아쉬운 정서가 크겠죠. 그러나 ‘제비 오지 않으니 꽃도 피지 않는다’라고 하면 의미에 있어서는 앞과 다를 바 없지만 봄이 아직 오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보다는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정서가 더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않는다’ 보다는 ‘않는데-’ 라고 어미를 생략하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가 더 여운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 여운 중의 하나는 ‘제비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는데 春愁와 春興이 무엇이 더 깊은가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구태여 알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봄이 오기만 하면 마냥 좋은 일이다.’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시는 ‘봄맞이’라고 표제를 붙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의 섬세한 감정의 번역에서 어미나 조사가 하는 구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한문은 이러한 시적 장치가 없으므로 이를 우리말로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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