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도 봄은 오지만 같은 봄이 아니다.
세상은 어수선해도 어김없이 또 봄이 왔다.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도 마음은 전과 같지 않다. 물론 가슴이 설렌다든지, 의욕이 샘솟는다든지 하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고작 그래도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는 정도이다. 하기야 근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3월이라고 해서 봄이 꼭 오리라는 보장이 있을까도 싶다. 그렇다면 지금 봄을 맞은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아직 입맛은 잃지 않아서 아내와 같이 봄나물을 캐러 나갔다. 바로 집 앞이건만 이제 조금만 쪼그리고 앉아있어도 다리, 허리가 아파 오래 견뎌내기 어렵다. 역시 나이를 먹으니 만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 전에도 이때쯤이면 일삼아 봄나물을 캐러 체신머리 없이 봄판을 돌아다녔는데- 오늘은 몇 분 버티지 못하고 이내 돌아오고 말았다. 이 나이에 봄판이 다 그렇지 뭐-
저녁밥상에 잠깐 뜯은 쑥이 어느새 국이 되어 올라왔다. 봄나물 하고서도 쑥국이 최고지- 잔뜩 기대를 하고 한 모금을 넣고 오랫동안 굴려보았다. 아내는 벌써 입맛을 다셔가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작년의 봄 내를 느끼지 못하겠다. 부지런히 혀를 움직여 보았지만 여전히 맛은 무덤덤했다. 쑥도 외래종이 들어왔나? 개가 똥을 누고 지나갔나? 나름 생각 중인데 아내가 무슨 위대한 발견이라도 한 듯 소리친다. 맞아! 당신 미각이 무뎌진거야! 그런가? 마누라가 그렇다니 별 수 없이 그런가 싶다. 아! 이게 늙는 거로구나! 작년만 해도 내 혀만은 믿어왔는데- 그렇다면 미각이 무뎌진 것이 어찌 봄나물뿐이겠는가? 내 입맛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매우 편치 않다. 그런데 마누라는 남편 늙은 것이 무엇이 좋아서 저리 감탄을 연발할까? 하기야 같이 늙어가는 것이 좋기도 할 것이다. 여자 심보에 나이 먹으면 남편 검은머리보다는 흰머리가 마음이 놓인다든가? 얌통머리 없는 마누라 같으니- 이 나이에 무엇을 하리라고? 혼자서나 할 말이지, 저렇게 떠들게 뭐람? 아니지- 내 입맛 맞추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런 기회에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꿍꿍이가 아닐까? 이것이 평소 자신의 노고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니- 물론 나 혼자 해 보는 억측이다. 미주알고주알 종알댔다간 경을 칠지도 모른다.
미각이 둔해진 것이 사실이니 사실대로 밝히는 아내를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생각해 보면 노인네 감각이 둔해진 것이 어찌 그것뿐이랴? 모든 감각은 물론 두뇌도 훨씬 이전부터 대책이 없어지지 않았던가? 문제는 모든 것이 낡고 둔해진 것이 아니라 그런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말하자면 철이 없어진 것이다. 철(哲)이 무엇인가? 명철한 두뇌활동이다. 그런데 나이 들면 두뇌활동이 통째로 둔해지는 것이다. 병을 스스로 알기만 하더라도 고칠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그걸 모른다면 병을 고칠 희망마저 없어진다.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렸다면 의술과 면역력으로 고칠 수 있지만 나이 들어 걸린 무감각, 건망증은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다. 의사들이야 갖가지 비방을 들어가며 호들갑 떨지만 그 말이 다 맞다면 늙고 병들 사람 하나도 없다. 처방이 많다는 것은 비방이 없다는 말과 같다. 나이 들어 생기는 자연의 질서를 어찌 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오래 살 궁리보다는 자연의 섭리를 순순히 따르고, 평소에도 내 감각과 생각이 이미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 괜히 엄한 약봉지를 부여잡고 병원 문턱을 쥐살나게 넘나들어 몇 년 이문 보느니 차라리 조용히 자연에 묻혀서 거기에 순명하는 삶이 좋지 않을까 싶다.
더러는 이런 순리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더라도 주변에서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인생은 칠십부터- 칠십 청춘- 칠십 중년-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 벼라별(별의별) 달콤한 말이 많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옛날과는 사정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말들은 대개 역설적이거나 격려 내지 자기최면적인 구실이다. 그런 구호들은 노인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노인을 속이는 일이다.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은 좋지만 어린애 같은 노인들을 속여 헛된 욕심을 갖게 할까 걱정이다. 그것보다는 나머지 인생을 보람있고, 의미있게 정리하는 도리를 일러주는 것이 노인과 사회의 발전과 행복을 위한 길일 것이다. 즐겁게 오래 살아 꼰대 짓을 하느니보다는 여생에 스스로 구실을 알아 어른 노릇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오래 살아 어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럴 노인은 매우 드무니 나는 거기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험난한 시대에 그나마 찾아온 봄에 감사하면서 철없는 노인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