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제사

by 김성수


천주교 성당(聖堂)은 거룩한 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당의 이미지는 대체로 엄숙, 위엄, 경건함이다. 그래서 그런지 충청도에서는 ‘성당’이 아니라 ‘스-ㅇ당’이라고 발음해야 더 거룩하게 들리기도 한다. ‘스-ㅇ당’의 정면 높은 곳에는 커다란 십자고상(十字苦像)이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고통스러운 모습이라서 고상(苦像)이지만 하느님의 무한한 희생적 사랑을 상징하고 있어서 역설적이게도 따뜻한 위안을 주기도 한다. 혹은 그것을 우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상징하기에는 썰렁한 십자가보다는 더 감동적이라는 생각이다. 그 아래 제대(祭臺)에는 굵은 촛불이 여럿이 있다. 그 촛불은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찬미와 감사를 의미한다. 그리고 제대와 아래에는 화려한 꽃꽂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 의미는 정성과 신앙심의 표현일 것이다.


Missa(미사)는 라틴어로 천주교회의 핵심적인 의식이다. 그 의식의 중심은 하느님에 대한 기억, 찬양, 감사와 복음전파를 위한 파견이다. 미사의 찬양과 감사와 기억은 우리 고유의식인 제사(祭祀)와 닮았다. Missa와 제사(祭祀)가 다른 언어임에도 ‘사’자 돌림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사제(司祭)는 제대(祭臺)에서 미사를 주도한다는 뜻이므로 미사와 제사는 공통점이 있을 것 같다. 우연이지만 사제를 거꾸로 말하면 제사이다. 미사에서 신도들이 제대 아래에서 사제가 주도하는 대로 따르는 모습은 우리의 전통적인 제사를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이것이 사제의 권위를 높이고, 성당을 엄숙, 경건, 위엄적인 분위기 만드는 이유인 것 같다. 이러한 성당의 권위적인 분위기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천주교를 경원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제사에는 제물이 있기 마련이다. 제물은 신에 대한 희생(犧牲)이고, 희생이란 글자에 牛자가 들어간 것은 바치는 희생물이 소처럼 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신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사회에서는 소처럼 값비싼 제물을 바치고, 심지어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가 가장 지극한 희생물이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진 이유이다. 심청이는 그것으로 황후가 되고 심봉사는 눈을 떴다지만 원시신앙에서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것은 무지에 의해서 벌어진 잔인한 제사였다. 지금 생각하면 제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정성이 중요한 것이다. 부모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몸을 팔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살림을 기울였던 유교의 풍습은 당연히 美風良俗(미풍양속)이 아니다. 정성을 다하는 것은 옳지만 그 돈으로는 산 사람이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고, 가혹한 십일조로는 이웃을 위한 기부가 더 큰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심이 약해서일까?


성당에 가보면 십자고상이 너무 크고 화려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스러운 그리스도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그리스도가 더 좋은지도 모르겠지만 제대의 촛불도 지나치게 크다. 특히 성탄, 부활 촛불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굵고 길다. 더구나 대초에는 그 해의 글자와 연도까지 쓰여 있어서 내년에는 다시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꽃꽂이는 제대의 중요한 구색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시들어질 그 생화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몇 만 원으로는 어림없을 것 같다. 다른 나라 성당에서는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성당의 화려한 제대가 거룩하게만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심이 그들보다 그만큼 더 깊은지도 모르지만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 꼭 그럴 것만 같지 않다. 아마도 우리 신자들의 신앙심보다는 생활수준이 높거나 성당의 소비수준이 높아서가 아닐까? 신앙심이 깊고, 경제수준이 높아서라면 좋은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 신앙심과 생활수준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더 힘쓴다면 더 성스러운 미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미사의 본래 뜻은 제사가 아니라 ‘밖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면 화려한 성당의 제대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비단 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크고 높은 성당의 종탑에는 더 큰 우려가 종처럼 걸려있다. 물론 이런 말들은 도시의 큰 성당에 한한 것이다. 시골 작은 본당이나 공소 제대에는 몽당초, 들꽃마저 힘겹다. 그렇다고 큰 본당의 신자들이 더 열심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왕 미사가 '찬송과 사랑의 실천'이라면 우리의 祭祀적인 의식(儀式)은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제대(祭臺) 사제(司祭)의 ‘祭’에서 문제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제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제물에 매몰되고, 그러다 보니 재물에도 눈이 어두워지지 않았을까? 커다란 성당건물을 짓기보다는 촛불과 꽃꽂이 값이라도 아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미사가 아닐까 싶다. 화려한 성당의 제대나 건물, 종탑이 혹시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관심이 없다면 하느님 앞에 그것을 자랑이라고 내세울 일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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