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44

산에 사는 즐거움

by 김성수

山居雜興

李書九 1754-1825


松翠荷香繞屋深◎ 솔은 푸르고 연꽃향은 집을 둘러 가득하고,

微風終日亂蟬吟◎ 미풍에 매미는 종일 제멋대로 울어댄다.

樵兄漁弟追凉至 나무하고 고기 잡던 아이들 더위를 피하여

愛此門前綠樹陰◎ 걸핏하면 삽작문 앞 나무 그늘을 찾아든다.


이 시는 여름철 한가한 농촌의 모습을 그린 서경시입니다. 한가한 장면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이 등장하여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수법이 좋아 보입니다. 한시는 정적인 배경을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동적인 장면을 제시하여 시적인 균형미를 추구합니다. 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陰陽相補(음양상보) 사상을 적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松송翠취荷하香향繞요屋옥深심

松 소나무. 본래 ‘솔나무’였지만 ‘ㄹ’이 탈락되어 ‘소나무’로 된 것입니다. 翠 푸르다. 비취. 荷香 연꽃 향. 繞 두르다. 屋 집. 집을 둘러있고. 深 깊다. 그런데 연꽃 향이기 때문에 '깊다'보다는 '가득하다'라고 옮기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繞와 深을 같이 서술어로 삼아 ‘집을 둘러 가득하고’라고 했습니다. 혹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푸른 솔’의 시각과 ‘연꽃 향’의 후각적인 이미지가 공감각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한적한 전원이 시의 배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微미風풍終종日일亂난蟬선吟음

微風 미풍. 시원한 바람. 終日 하루 종일. 亂蟬吟 어지러운 매미소리. 吟은 읊는다. 노래한다. 그런데 '읊는다' '노래한다'라고 옮기면 亂과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에 '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습관상 매미나 새의 소리를 '운다'라고 표현하기를 좋아합니다. 매미소리가 시끄럽고, 어지럽다기보다는 ‘제멋대로’가 더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매미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제멋대로 울어대어’ 전원의 멋을 더욱 깊게 하는 유쾌하고, 유장한 자연의 교향악일 것입니다.


樵초兄형漁어弟제追추凉량至지

樵兄 나무하는 아이. 漁弟 고기 잡는 아이. 兄弟는 개구쟁이 동네 아이들을 뜻합니다. 追 좇다 따르다. 凉 그늘, 시원함.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늘을 좇아서'라고 하기보다는 '더위를 피하여'라고 옮기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至 이르다. 그러나 앞에서 서술어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至는 다음 구로 옮기는 것이 시의 연결에 좋습니다. 나무하고 고기 잡는 동네 아이들이 더위를 피하여 내 집에 왔으니 반가운 일입니다.


愛애此차門문前전綠록樹수陰음

愛 사랑. 그러나 여기에선 좋아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대상은 뒤의 ‘나무 그늘’이라서 이와 연결시켜야 하는데 ‘나무 그늘'을 좋아한다고 하면 시가 이상해집니다. 그래서 '좋아하다'라고 하기보다는 ‘걸핏하면’이라고 해서 그것이 습관적인 행동이라는 사실을 옮기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습관적인 행동은 좋아한다와 같은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此門이 아니라 나무그늘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구의 서술어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앞 구의 至를 끌어와 와 ‘찾아든다’라고 해서 서술어를 대신하는 것이 번역시를 안정되게 할 것입니다. 혹은 이런 번역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언어를 옮길 때에는 경우에 따라서 문법에 구애받지 않아야 합니다. 此門은 주인집 문, 그 문은 나뭇가지로 얽어 만든 삽작문이어야 어울릴 것입니다. 前 앞. 綠樹 푸른 나무. 陰 그늘. 실제로 나무는 푸르더라도 그늘의 색깔은 없겠지요. 그래서 綠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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