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곰솔을 아시나요?
제주도에는 곰솔이 많다. 난대기후인지라 소나무는 적은 편인데 곰솔이 많다면 여기의 소나무는 대부분 곰솔일 것이다. 곰솔을 해송(海松)이라고도 하는데 바닷가에 해송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곰솔을 흑송(黑松)이라고도 하는데 잎이 유달리 크고 짙으며, 나무껍질이 상대적으로 검은 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검다’는 한자 黔(검)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그렇다면 본래 ‘검솔’이었던 것이 ‘곰솔’로 음전(音轉)된 것이 아닐까 한다. 드물지만 음도(音倒)도 있다. 배꼽은 배 복(腹)의 '복'자가 뒤집어져서 '곱 - 배꼽'이 된 말이라고 하니 재미있다. 그러나 '문'을 뒤집어서 '곰'이 되고, '윤'을 뒤집어서 '굥'이 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 슬픈 말장난이다. 어쨌든 곰솔은 곰과는 상관없는 이름이지만 다른 소나무보다 유달리 더 검고, 크고, 우람한 모습이 곰을 닮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곰솔은 시커멓고, 육중하고, 둥글둥글한 모습이 마치 커다란 반달곰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단순한 색깔에 의존한 ‘검은 소나무’보다는 곰을 닮은 ‘곰솔’이 더 친근감이 드는 이름인 것 같다. 우리 대통령의 이름도 그렇게 친근감이 들었으면 좋겠다. '대통령'도 짧지 않은데 구태여 '님'자를 붙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대통령을 친근감있게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을 물어뜯고, 감옥보내기에 몰두한다면 우리 대통령과 나라의 비극은 끝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비극은 제 잘못이라 해도 나라의 비극은 민족의 참극이니 말장난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육지에서 곰솔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제주의 곰솔은 엄청 커서 세 아름이나 되는 것도 있다. 곰솔은 굵기도 하지만 키도 크고, 하늘로 곧추 올라서 위압적이다. 그런 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두고 그냥 지나친다면 정서가 메마른 사람일 것이다. 더구나 더운 여름이라면 더 그렇다. 해설판에는 수령이 백여 년이라고 써 있지만 아무래도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것 같다. 아니면 곰솔이 다른 소나무보다 성장이 빨라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곰솔은 속리산 정이품송, 백두산 미인송, 동해안 금강송, 안면도 해송하고는 품격이 다르다. 그것들이 예쁘고, 날씬하고, 점잖은 품격이라면 용산의 곰솔은 이름대로 굠처럼 우직스럽게 우람하고, 크고, 사뭇 위압적이다. 그런 곰은 오래 가지 못한다.
곰솔은 소나무 중에서도 재질이 단단해서 건축물의 목재로 좋다고 한다. 해송이라서 옛날부터 선박용으로 많이 쓰였다. 충무공이 왜적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곰솔의 단단한 재질 덕분이었다고 한다. 왜군 배는 무른 삼나무로 만들었기에 우리 배로 밀어붙이면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곰솔의 껍질은 유달리 두껍고 무늬가 촘촘하다. 그러고 보면 곰솔은 두터운 철갑 옷을 입고 있는 용맹한 장수 같기도 하여 ‘장군송’이라고 부를 만하다. 솔방울도 유난히 크고 길쭉하다. 애국가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곰솔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서귀포에는 홍로담 솔밭을 비롯한 몇 개의 솔숲이 있다. 올레길에도, 계곡에도 웅장한 곰솔이 위용을 드러내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전에는 곰솔의 직경이 1미터에 이른다고 했지만 내가 본 것만 해도 그보다 훨씬 굵은 나무가 많다. 곰솔이 반드시 장군같이 위압적으로 생긴 건 아니다. 어떤 것은 정이품은 못되더라도 당상관쯤은 충분한 점잖은 품격을 갖춘 나무도 있다.
나는 틈이 나면 곰솔 숲을 찾기를 좋아한다. 몸에 좋다는 치톤피트도 좋지만 그 우람한 덩치가 매력이다. 그래서 그런지 곰솔밭에는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더라도 여간해서는 풀들이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좀처럼 썩지 않는 솔가루와 언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솔방울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나무에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솔바람처럼 시원한 나무 그늘도 드물다. 사람이 너무 위압적이면 주변에 사람이 꼬이지 않는 법인데 곰솔도 그런 사람을 닮지 않았나 싶다. 잡초는 용납하지 않되 사람은 불러들이는 곰솔은 나무의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군자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니 억울한 일인가, 아니면 十長生에 들어갔으니 그것이 더 영광스러운 일인가? 같은 소나무라도 곰솔은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추사의 歲寒圖(세한도)에 그려진 소나무는 사실적인 그림이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림 속의 주인공 소나무 껍질의 모양이 곰솔을 닮아서 제주의 곰솔을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비록 그런 곰솔은 보지 못했지만 그때에는 제주에 세한도의 소나무와 닮은 곰솔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곳에 있는 곰솔을 다 보지 못했지만 서귀포에 있는 곰솔은 유난히 크고, 많다. 어쩌면 활엽수가 많아서 더 눈에 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귀포 사람들의 곰솔사랑이 유난히 깊어서가 아닐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곰솔이 지금까지 장관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한라산은 서귀포에서 보아야 가장 한라산답다. 한라산은 설문대할망이 누워있는 모습이라는데 정상의 거대한 할망의 얼굴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서귀포이다. 불자들이 보면 부처님이 누워있는 臥佛(와불)로 보일 것이다. 제주의 남단 한 가운데라 겨울에는 가장 따뜻하면서도 여름에는 가장 시원하니 곰솔이 많은 서귀포야말로 가장 제주다운 곳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