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동홍동에는 하영 올레길이 있다. 도심 중에 이런 힐링공간이 있어 자주 걷곤 한다. 산보 중에 보니 올레길에서 할머니가 핸드폰을 손자에게 디밀면서 열심히 한글 자음을 가르치고 있었다. 손자는 천방지축 딴짓을 하고 있건만 할머니는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얼핏 엄마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젊은 이 할머니는 사람 많은 올레길에서 나름 손자를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지능은 어릴 때 형성된다는 이론을 믿는 사람들이 많고,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포대기에서부터 갖가지 공부를 시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그것이 수준 있는 부모임을 입증하고, 성숙한 교육열을 과시하는 것처럼- 그래서 마음대로 놀아야 할 어린애를 닦달해서 유아원,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서 배울 내용, 이른바 선수(先修)학습을 시키기에 바쁘다. 그야말로 공부 선수(選手)로 키울 작정이다.
만약 그것이 정말 아이의 장래를 행복하게 하고, 사회와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풍조가 시작된 지 오래이지만 전보다 더 유능한 인간이 배양되고, 더 행복한 사회로 발전한 것 같지 않은 현실이다. 베갯머리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비싼 돈을 들여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산수를 가르쳤지만 더 유능하고 행복한 인재로 성장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더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고, 공중도덕을 모르는 아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세계적인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의 교육이 성공적이라고 자신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계 최빈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것은 최고 수준의 교육환경에서 학교를 다닌 MZ세대가 아니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구세대들이다. 지금 고등교육을 받은 새 세대가 더욱 발전된 사회를 이룰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사람은 사람답게- 애들은 애들답게-’ 막연하고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이상 좋은 교육목표가 또 있을까? 문서상 우리의 교육목표는 '홍익인간'인데 우리는 오로지 내 이익을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고, 어른들의 출세욕 구만을 강요하면서 아이들을 못살게 괴롭히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영아, 유아에게 한글, 알파벳, 산수를 가르치는 것이 애들답게, 홍익인간으로 키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조기교육이라고 말할 테지만 ‘교육’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
흔히 교육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맹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치는 것을 ’교육이라 했다. 여기에서 말한 ‘敎育’이란 말은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닌 짐승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라고 한다. 사람을 가르치더라도 사람답지 않은 짓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짐승과 같이 ‘훈련’이라고 해야 옳다. 구조견, 안내견, 탐지견 등 좋은 일을 하는 개에게도 교육이라 하지 않고 훈련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사람답지 않은 일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이라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 폭력을 휘두르는 기술, 사기, 기만, 절도, 방종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회의 발전과 행복에 반하는 이기주의, 물신주의, 출세주의-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에도 교육이란 말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훈련을 시키고 있는가?
조기교육이란 어릴 때부터 소질과 적성을 살려서 가르치자는 말이고, 그것이 서양에서 말하는 Education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조기교육의 효과가 입증되었더라도 누구에게나, 반드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맹신하고 있다. 그것도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인성, 소질, 적성, 창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출세를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 예절, 공중도덕, 협동, 양보, 배려, 사랑- 이런 인성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교육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 대신에 학원을 전전하며 입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과 무한경쟁에 몰입시키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린애들에게 우리는 어떤 인성교육을 하고 있는가? 인성은 제쳐놓고 무한경쟁의 싸움터에 몰아넣고서 정상적인 인간을 기대한다면 가라지를 뿌려놓고 알곡을 기다리는 꼴이 아닐까?
흉악범이나 조폭, 성범죄 범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짐승보다 더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고학력자들인 우리 정치인, 검사, 관료, 언론인, 사기범들은 출세에 필요한 훈련은 열심히 받았겠지만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흉악범 이상으로 이 사회와 나라를 이렇게 어지럽게 만들 리 없다. 사람들은 히틀러, 김정은, 푸틴, 시진핑을 남의 일처럼 욕하지만 우리 권력자들도 하는 짓을 보면 아무래도 이들 못지않을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이 크다.
오늘 올레길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이 아름다운 그림인지, 아니면 슬픈 우리의 단면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할머니가 진정 손자를 사랑한다면 손전화를 들고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손자가 마음대로 뛰어다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꿈을 심어 주고, 동화를 들려주고,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의범절, 좋은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 진정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