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의식 2

민주주의 국민은 역사의 주인이다.

by 김성수

요즈음처럼 역사라는 말이 주목을 받는 때가 또 있었던가 싶다. 우리는 흔히 ‘반만 년 역사’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에 걸맞은 역사의 기록은 빈곤하고, 역사의식도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현전 최고역사기록인 <삼국사기>는 12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졌으니 ‘반만 년 역사’란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물론 그전에도 역사기록이 있었지만 그것을 보전하지 못했으니 결국 '역사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과거이지만 '의식'은 미래이다. 의식이 없는 역사는 반성과 발전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역사의식은 어떨까? 현대사에 이르면 아쉬운 게 아니라 참담할 지경이다. 조선의 멸망이나 일제 강점기는 어쩔 수 없는 조상의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해방 후의 현대사는 명백한 우리의 몫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현대사는 물질적으로는 역대급의 번영을 이루었다고 하나 정신적으로는 또한 역대급 타락이라면 심한 표현일까? 그렇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점에서 국민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인정해야 한다.


해방 후 이승만 정부의 수립은 조국 분단의 뼈아픈 역사의 출발이었고, 일제의 앞잡이인 친일파들이 정권을 장악한 ‘불의의 역사’였음을 의식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물론 그런 역사를 잘 가르쳐 주지 않은 정부의 탓도 크지만 교육강국의 국민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후로도 역대 정권들은 정권유지를 위해서 늘 통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다. 혹시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용공 빨갱이로 몰았던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대사이다. 조국광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애국지사는 자손마저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와 친일 부역자들은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려온 패륜의 역사를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역사의식이 모자라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형편에 후손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정의는 불의를 이기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외국의 언론이 한국은 정직과 성실이 가장 결여된 나라라고 콕 집어서 말했다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할 자신이 있을까? 이것이 우리 국민의 책임이요, 현대사의 비극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우리는 민족의 분단과 불의의 역사를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었다. 그래서 그동안 어떤 정부도 대놓고 분단을 정당화하지는 않았고, 일제의 잔재를 지우려는 노력과 함께 친일행각을 나무라고 반성할 줄은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놓고 전쟁광인 북한과 극한대립을 일삼고, 과거청산도 없이 일본을 우방이라 선언하고, 미군을 끌어들여 안보를 명분으로 전쟁놀이를 하고 있으니 걱정스러운 일이다. 미군 폭격기와 핵잠수함으로 과시를 하는 것은 전쟁억제는커녕 북한을 자극하여 독을 품게 할 뿐이다. 그런 위협과 시위로 해서 우리의 안보는 더 위험해지지 않았는가? 지금 북한과 전쟁을 원하는 국민이 있을 리 없건만 대통령이 독단쳐 전쟁을 일으킬 권리가 있을까? 구태여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한반도가 한미일 동맹의 최전방에 놓여있는 것이 분명하다. 양 진영의 최전방에서 돌격대 ‘핵받이’가 되는 것이 이른바 우리의 안보요, 평화외교란 말인가? 더구나 일본은 과거에 대한 일체 사과도 없이 독도를 내놓으라 윽박지르고, 핵오염수까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데 - 이 정부는 과거 역사는 아랑곳없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양보하고, 굴종적 외교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의 역사의식이다. 역사적으로 항상 우리를 괴롭혀 온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어 저들을 우리 영토에 끌어들인다면 친일 극우정권의 또 다른 매국행위가 아니겠는가? 국민을 무지렁이로 보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다가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대륙을 몽땅 잃고서 역사를 한반도로 가두어 놓은 신라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리의 국력으로 세계 최빈국인 북한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멸공과 흡수통일을 외친 자들은 안보를 핑계삼아 정권을 유지해온 교활한 사기꾼들이다. 선제타격론으로 불을 질러놓고서는 북한이 위협할 때마다 의연히 맞서기는커녕 허겁지겁 미국과 일본에 구걸해서 그들의 군대를 끌어들인다면 비겁한 호가호위(狐假虎威)로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드는 짓이 아닌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구절벽, 교육대란, 무모하고 극단적인 편향외교, 핵오염수 투기, 새만금 사건, 홍범도 동상 철거, 해병대 국기문란 사건- 알고 보면 이 모두 역사의식의 결여에서 빚어진 일들이다. 눈앞의 현상에만 급급하여 과거를 돌아볼 통찰력이 없고, 미래를 설계할 국정철학이 없다면 통치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통치자가 역사를 모르면 외교의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못하고, 국정의 선악과 가치를 매길 줄 모르고, 일의 경중(輕重)을 판단하지 못하는 법이다. 게다가 현 정부처럼 권력에만 집착하다 보면 역사를 부정하고, 역행하고, 왜곡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조폭은 한 지역을 어지럽히는 데 그치지만 통치자는 온 나라를 망치는 법이다. 통치자가 정상이 아니라면 국민이라도 과거에 비추어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집권 일 년이 넘었어도 이루어진 건 없고, 부질없이 인접국을 자극하여 안보는 위태로워지고, 國富(국부)를 유출하고,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아직도 이기적인 기득권 챙기기와 허망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으니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언제까지 전 정부 탓이나 하고, 편을 갈라 내 잇속만 차릴 것인가? 뉴라이트 극우유투버들이 횡행하는 이 정부의 反역사적인 죄과는 고스란히 국민이 책임져야 하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닌가? 다음 정부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엉망이 된 외교를 굽신거리며 뒤치다꺼리하기에 바쁠 것이다. 역사논쟁이 뜨거운 지금 우리는 역사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 국난극복에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군주가 없을 때에도 3.1 운동으로 국민이 주인이 되었었고, 통치자가 제 구실을 못하면 4.19, 5.18, 6.10, 촛불혁명으로 국민이 주인이 되었던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 정부와 야당이 싫어서- 혹은 ‘설마 나라를 말아먹기는 하겠나’라며 팔장끼고 있으면 나라는 점점 나락에 빠지고, 후세에는 부끄러운 국민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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