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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Oct 20. 2023

교만(驕慢)에 대하여

      

  교만(驕慢)은 한자어이고, ‘분수를 모르고 우쭐대다’라고 말하면 더 알기 쉬운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분수와 능력을 넘어서는 과시적 허세로 불교, 기독교에서도 부도덕하거나 죄악으로 규정되었다. 남을 업신여기는 오만(傲慢)과 유사한 말이다.    

  

 그런데 驕라는 글자에 왜 馬가 끼어들어가 있는지 흥미롭다. 말이 교만의 상징물이라니? 흔히 한자는 상형문자라 해서 한자를 그림이나 뜻으로 풀이하려 들지만 한자를 온전히 뜻으로만 풀이할 수 있는 상형자는 통틀어도 2백 자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대부분의 한자는 부수(部首)에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소리를 지정하고 있는데 이런 한자조어(造語)방법을 형성(形聲)이라고 한다. 驕가 그런 형성자인데 馬의 뜻에 ‘喬’라는 소리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그러므로 본래 喬는 뜻과는 상관이 없는 음성기호일 뿐이다. 다만 喬에 ‘크다, 높다’라는 뜻도 있으므로 ‘키가 큰 말’이라고 풀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른 예로 詩라는 글자도 言의 뜻에 寺라는 소리가 합해진 형성자이다. 詩는 ‘언어’라는 뜻만 가지고 있을 뿐, ‘절(寺)’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글자이다. 이러한 원리를 모르고 詩를 ‘절에서 읊는 글’이라고 풀이하면 해괴한 풀이가 아닐 수 없다. 주변에서 이런 식의 한자풀이가 흔한데 대개 억지를 면치 못한다. 


   농경지가 많았던 중국에는 본래 말이 많지 않았지만 전쟁이 잦으면서 전투용 말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북방이나 서역에서 대량으로 말을 들여오게 되어서 말에 대한 글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자연히 말의 크기나 색깔, 기능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이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驕는 말의 크기를 나타낸 말이고, 경기도 여주(驪州)의 여는 ‘검은 말이라는 색깔’이고, 수레를 끄는 말을 驂(참) 駟(사)라고 하였으니 이들은 모두 말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말, 망아지' 정도가 있을 뿐이니 우리나라에는 본래 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말 중에서도 駒(구)는 5척이 안 되는 망아지이고, 驕(교)는 6尺 이상으로 성장한 말을 일컫는 글자였다. 망아지가 자라서 驕에 이르면 이제 한창 힘자랑할 때가 되어서 우쭐대기 시작한다. 같은 말이라도 키 작은 당나귀나 노새를 생각하면 그럴 만한 일이다. 키 큰 여자가 키 작은 남자를 우습게 보는 경향도 이럴 것이다. 그래서 ‘교만한 말’이 되는 것이다. 교만한 말은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들은 척도 않으니 그야말로 馬耳東風(마이동풍)이다. 그러니 교만한 사람은 ‘시건방진 말’인 셈이다. 출세한 사람들이 대개 그런 말을 닮기 마련이다.  

  

   騙(편)은 말이 아니라 사기꾼을 일컫는 말이다. 사기꾼에 말(馬)이 끼어들어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기꾼이란 허장성세를 해야 하므로 좋은 말을 타고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였다. 지금 사기꾼이 고급승용차를 빌려타고 다니면서 횡행하는 원리와 같은 이치이다. 카트를 타고 골프장을 누비며 권세자들과 어울리는 자들 중에는 사기꾼이 많다. 옛날의 말이 카트로 바뀌었을 뿐이니 이들이 곧 騙子(편자)- 즉 사기꾼이다. 이런 자들을 지금은 로비스트라고 부르고 있으니 사기꾼들이 합법화, 정당화된 꼴이다. 사기꾼보다는 낫겠지만 교만은 비윤리적이다. 누구든지 남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소신, 긍지, 원칙, 의지라는 것도 교만에서 멀지 않다. 심지어는 겸손을 갖춘 사람도 자신이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순간 교만에 빠져들기 쉽다. 교만은 이룬 자, 갖춘 자가 피하기 어려운 함정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남보다도 못한 재능이면서, 이룬 것도 크지 않으면서, 갖춘 것도 모자라면서 오히려 교만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일말의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을 나의 능력으로 간주하곤 하였다. 나의 존재가치를 찾기 위해서 애써 갖추려고 노력했던 긍지, 의지, 자존심, 정의감, 사명감, 개성, 약자에 대한 동정심 —그런 것들이 오히려 독선과 교만에 빠져들게 했다. 교만한 사람은 남에게 존중받거나 호감을 사기 어렵다. 그 대신 경계, 시기, 미움을 사게 된다. 젊어서는 자신의 신념, 의지로 삼을 수 있었겠지만 늙어서는 잘해야 敬遠(경원)을 받게 될 뿐이다. 경원이란 겉으로는 존경하는 것 같지만 마음으로는 멀어진다는 뜻이다. 자식을 많이 두어도, 지식깨나 쌓았어도, 재산깨나 모았어도, 교제가 아무리 넓어도 나이가 들어 경원을 받게 되면 꼰대를 면할 수 없게 된다. 지위. 지식, 재력, 권력-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일수록 말과 같은 교만에 빠지기 쉽다. 


  교만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겸손만한 것이 없다. 교만은 사람이 피하기 어려운 함정이지만 겸손은 이르기 어려운 경지이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겸손해지기 쉬울지도 모른다. 점차로 쇠약해지는 심신은 자신의 한계를 더 쉽게 깨달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모두들 무병장수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을 과신하게 되어 겸손해지기 어렵게 된다. 늙어 심신이 쇠약해지는 것을 구태여 원망할 일이 아닐 것 같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겸손하고 건강한 정신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에 늙어서까지 심신이 건강하다면 좀처럼 교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몸이 건강한 교만보다는 쇠약한 육체라도 겸손을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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