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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Nov 10. 2023

겸손(謙遜)에 대하여


  교만이라는 죄악을 벗어나는 길은 겸손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謙을 흔히 ‘겸손할 겸’이라고 풀이하지만 정작 겸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겸손하기 쉽지 않은 것은 겸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謙자의 부수가 言이어서 말이 핵심인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국 최고 권위의 사전인 <說文解字(설문해자)>에 의하면 謙의 본래 뜻은 敬이다. 경을 ‘공경’이라고 풀이하는데 상대방을 존중하고, 높이고, 삼가라는 뜻이다.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마음으로 높이고 삼가라는 것이 그 본뜻이다. 

 

  겸손의 遜을 字義(자의)를 살피면 그 내력 또한 순조롭지 않다. 역시 <설문해자>에 의하면 본래는 '자손, 손자 孫'이었다고 한다. 즉 손자가 할아버지를 대하듯이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본래의 글자는 ‘손자가 할아버지를 대하는 마음’인 愻이었는데 변천과정에서 잘못되어 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遜자는 잘못된 글자인 셈이다. 謙이건, 孫이건, 遜이건 그 뜻은 遁(둔)- 숨다, 물러나다, 낮추다라는 뜻이다. 매사를 할아버지 대하듯이 한다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옛사람들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고, 요즘의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렇게 극진하게 공경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다. 당장 손자는 적고 할아버지는 많으니 버르장머리 없는 손자, 자식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런 세상에서 노인이라고 해서 겸손할 줄 모른다면 공경받기도 어려운 일이다. 공경받으려면 우선 희소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겸손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래서 겸손보다는 좀 부담이 적을 듯한 謙讓(겸양)이란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겸양이라면 상대방을 공경까지는 못하더라도 배려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고, 공손은 아니더라도 양보쯤은 도로운전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讓步(양보)는 뒤로 몇 걸음만 물러나도 실천할 수 있는 예의이다. 겸손이 어려우면 양보라도 할 수 있는 미덕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똑똑하고 잘난 정치인들한테 겸손하라고 하면 지나친 요구일 터이니 제발 양보라도 하면서 설쳐댔으면 좋겠다. 


  성현들 중에는 謙虛에 이른 분들도 있다. 겸허가 겸손, 겸양이나 비슷한 말이라고 설명하는 사전도 있지만 虛는 인간의 욕구를 다 비우라는 말이니 같을 수가 없는 경지이다. 虛의 본래 글자는 虍에 丘가 합해진 形聲자이다. <설문해자>에 의하면 丘는 곤륜산에 있는 큰 언덕으로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욕심이라고는 존재할 수 없는 곳으로- 상대방을 존중, 공경하는 태도로도, 손자가 할아버지를 받드는 마음으로도 부족하다. 겸손, 겸양하려는 의도조차 비워야 가능한 일이니 우리 같은 범인들은 바랄 수 없는 경지이다. 그렇건만 교만으로 가득찬 정객들이 궁지에 몰리면 으레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라고 거짓말을 해대니 겸허를 심하게 모욕하는 짓이다. 그들이 정말 겸허할 줄 알았다면 애초부터 정치판에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겸손하라고 하니 말이나 겉치레를 갖추려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인들은 안하무인하다가 선거철만 되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척’하면서 겸손을 위장한다. 그들이야 원래 양심이란 한 푼어치도 없는 인간들이니 제쳐놓더라도 그런 정객들을 혐오하면서도 그들의 뻔한 거짓말에 늘 속아 넘어가는 유권자들이 문제이다. 투표를 마치고서는 또 그들을 욕하기 바쁘다. 그럴 줄 몰랐다- 이번에는 달라질 줄 알았다-  심지어 물러나라- 탄핵하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도 선거 결과와 어지러운 정치에 책임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시민이라 자처하면서도 정치인들의 기만에 번번이 넘어가고 부화뇌동까지 일삼으니 참으로 나잇값 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나 같은 범인이야 겸손이 어려우니 우선 상대방을 배려하고, 나아가 존중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것만 해도 나만 옳다는 꼰대를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나이가 어리건, 나보다 못하건, 하는 짓이 못마땅하건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안다면 상대방도 나를 존중해 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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