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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Nov 24. 2023

노인의 건강

  <위키백과>에서 건강에 대하여 말하기를 “일상생활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종합적인 능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신체적인 역량'을 건강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 건강을 영어로 말하면 Health이고, ‘헬스클럽’ ‘헬스장’ ‘헬스하다’ 심지어 근육자랑하는 시합을 ‘헬스대회’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건강을 육체적인 기능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건강상담, 건강크리닉, 건강안내 활동들도 대개는 육체적인 건강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체력은 국력이다’라면서 올림픽 메달사냥에 국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건강은 최고의 재산이다’도 마찬가지이다. 정신과 의사 정도가 건강을 정신적인 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건강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란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명제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런 메탈적 건강주의에 빠지면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건강한 신체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나아가 건강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건강의 이념인 ‘개인적, 사회적 대처능력’이 신장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건강은 사회적 능력의 중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회적 능력의 조건이 충족되는 것도 아니고, 설령 건강을 잃는다 해도 사회적 능력을 다 잃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육체적인 건강만을 추구하다가는 오히려 인간을 천박스럽게 만들 수도 있고, 자만으로 쉽게 적을 만들 수 있어 오히려 사회적 능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힘을 내세우거나 잘난 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적인 수준이 높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강인한 완력보다는 인격이나 교양을 갖추고, 도덕적이고 겸손한 사람을 존중한다. 이는 육체적인 건강보다 정신적인 건강이 사회적 건강과 관련이 깊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질만능주의가 횡행하거나, 강력한 지도자가 존중받거나, 동족을 주적으로 삼고, 압도하는 전투력만이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수준이 낮은 사회이다. 60년 전이 그랬는데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역사의 퇴행이 틀림없다.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도 그렇다. 독재자가 나라를 위험하게 만들 듯이 육체적 건강만을 믿는 사람도 그렇다. 그런 건강도 젊을 때 얘기이지 늙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나이가 들면 강인한 육체도 유지되기 어렵거니와 유지된다 해도 젊을 때와 같을 수 없다. 신체의 노쇠현상을 서러워하기보다는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체 기능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몸을 삼가서 사용하라는 자연의 가르침이다.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가려서 보라는 뜻이고, 귀가 어두워지는 것은 다 들으려 하지 말라는 뜻이고, 목청이 작아지는 것은 말을 줄이라는 뜻이며, 기운이 줄어드는 것은 다투지 말라는 뜻이요, 성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기운을 아껴쓰라는 뜻이 아닐까? 동시에 신체적인 건강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이 더 필요해졌다는 자연의 가르침이 아닐까? 그러니 나이가 들걸랑 이제는 정신적인 건강을 찾는데 노력할 때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늙어서도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면 젊어서의 혈기를 누르지 못하여 노인답지 못한 과오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늙은이가 젊은이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늙은이 주책, 망령, 푼수, 꼰대 - 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쇠와 노인병은 이런 허물들을 면하게 해 주는 호신부(護身符)이다. 이 호신부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사회생활의 이치, 현명한 처세, 죽음에 대한 성찰을 가져다준다. 이런 것들은 육체적인 건강 대신에 정신적인 건강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제는 정신적인 건강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할 시기에 이른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무병장수보다는 짧더라도 의연한 죽음을 준비하고 싶다. 九九八八은 내 욕심일 뿐, 후손들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과욕임을 알아야 한다. 노령화 사회에서 사는 노인들은 건강의 의미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내 건강만을 생각하는 것은 건강한 삶이 아닐 것이다. 신체적으로 건강할수록 겸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노쇠할수록, 병이 들수록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해질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여우의 신포도’라고 하겠지만 날로 쇠약해지는 몸과 찾아오는 질병은 노인을 지켜주는 하늘의 섭리로 곱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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