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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Dec 15. 2023

빨갱이 이야기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핵심어 중의 하나가 보수와 진보일 것이다. 글자대로만 보면 과거의 것은 지키자는 것이 보수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자는 것이 진보일 것이다. 다만 어느 쪽이건 그럴만한 ‘미래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보수가 아니라 수구요, 진보가 아니라 일탈일 뿐이다. 지금 우리의 보수, 진보는 누가 보아도 미래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 옳다고 아귀다툼을 그치지 않지만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느냐에 대한 회의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공자가 군자의 덕목으로 제시한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용어로 말하면 溫故는 보수이고, 知新은 진보에 해당할 것이다. 공자의 화법대로 말하면 '保守而進步'라고 설명해도 좋지 않을까? 교육강국의 민주시민으로 자처한다면 공자가 말한 군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설령 군자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지켜내야 하고, 개선해야 할 것은 개선할 수 어야'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민주시민을 처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어느 한쪽을 내세우는 명분이 아니라 한 집단이 공유해야 할 덕목이다. 설령 일시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해서 통합해야 이상적인 민주사회를 이룰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치기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더구나 보수는 右, 진보는 左라는 근거 없는 프레임까지 더하여 꼬여있다. 더 비극적인 일은 여기에 세계 유일한 분단국이 되어 南右北左라는 망국적 편가르기가 민족의 앞날을 막아서고 있다. 게다가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은 빨갱이라는 희한한 용어를 발명하여 좌경, 진보세력을 매도하는 구호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빨갱이’라는 말은 원래 빨치산(partizan)에서 온 말이다. 빨치산은 프랑스의 민중항쟁에서 시작하여 러시아 공산당의 비정규 무장투쟁 집단을 일컫는 말이었다. 홍범도 장군이 러시아로 망명하여 공산당 빨치산을 용납했다고 해서 위대한 항일 애국투사들을 졸지에 빨갱이를 만드는 것은 무지한 역사만행이다. 그가 빨치산을 인정한 것은 우리 독립군의 투쟁방식이 그와 같았던 게릴라 전술이었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그들을 빨갱이로 만들어야 자신들의 친일행각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홍범도가 정말로 공산당이었다면 죽음의 땅 중앙아시아까지 추방되어 극장 문지기나 하다가 속절없이 죽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일 애국지사들을 빨갱이라 몰아세운다면 우리의 항일투쟁사는 무엇이 되는가? 기껏 3할의 지지를 받는 이들이 역사를 주무르고 있으니 역사가 기가 막힐 일이다.  

  공산당들이 육이오를 일으켜 동족상잔을 벌이고, 빨치산이 악명을 떨쳤던 역사가 사실이더라도 빨갱이 트라우마를 이용하여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빨갱이 타령을 하는 것은 심각한 시대착오행위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3명의 대통령과 정치인, 지식인, 노동자들까지 빨갱이로 규정한다면 우리의 현대사는 무엇이 되는가? 대통령은 물론 국민 다수가 빨갱이라면 우리는 빨갱이 나라가 아닌가? 과연 그런가?

 

 국가의 흥망이 걸린 지금 대통령이 앞장서서 벌이는 이념논쟁은 실로 시대착오적인 국력소모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다고 해서 북한의 전쟁 위협이 없어질 리 없고, 우리의 국력이 신장될 리 없고, 우리의 사회가 행복해질 리도 없다. 오히려 분단과 대립만 고착시킬 뿐이다. 그런데 오로지 정권유지를 위해서 국민을 저급한 이념논쟁에 빠뜨리는 행위를 용납해야 하는가? 혹은 보수- 진보의 대립을 필연적이거나 정당한 대립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한낱 과정일 뿐,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프랑스는 좌우 대립을 극복하여 민주주의를 성취했고, 영국은 지금도 보수와 진보가 정권을 주고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70년도 넘은 옛날 미국의 매카시즘 망령을 따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빨갱이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트럼프의 극우가 미국을 위태롭게 하듯이 좌경빨갱이 타령이 우리의 미래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다.


  지금 영화관을 휩쓸고 있는 <서울의 봄>이 극우세력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전두환 군부독재와 현 정부의 검찰통치가 닮은 데가 있다는 여론이 부담이 될 듯도 하다. 휴전선을 비워두고 최전방 군대를 빼돌린 매국적인 군사쿠데타가 옳지 못하다면 마땅히 후손들에게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옳건만 이를 경계하고 거부하는 것은 또다시 역사를 부정 왜곡하는 짓이다. 이들의 유치한 빨갱이론에 놀아난다면 우리의 장래를 위해서 실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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